나에게 눈물이 없다
고 은
저 60년대 후반의 어느날
나는 가람일기를 읽었다
(......)
읽으면서 울었다
그 삶의 끄트머리 따라가며 울었다
(......)
그 뒤 다른 일로 몇 번인가를 흐득흐득 울었다
이제 나에게 울음이 없다
날마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죽어가는데
저 봉천동 윗말 할머니 여생에는
식은 연탄재뿐인데
두만강 숫처녀가 갈보가 되는데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허리에 폭탄 매고 달려가는데
서울역 지하도 노숙자가
신문지 덮고 뻐극뻐극 앓고 있는데
아, 이 세상에 더 이상 눈물이 없다
실컷 울고 난
푸른 하늘이 없다
그 많은 푸른 하늘의 신들 다 죽어버렸다
나에게 눈물이 없다 눈물의 피가 없다
이 캄캄 벼랑 어이 건너갈거나
---시집 『허공』(창비,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