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기(昔遊記) 8 - 김남주 시인을 소개합니다(1)

by 유천 posted Nov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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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주 시인을 소개합니다(1)



총구가 나의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양심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똥구멍이라도 싹싹 핥아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양심 나의 싸움은 迷宮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손이 되어 발가락이 되어 혀가 되어

김남주 시인. 이 분이 시인이란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8편의 시 가운데 하나인 <鎭魂歌>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1973년 3월,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박정희의 유신악법체제에 항거하다 체포되어 어느 경찰서로 끌려간 시인은 수사관들로부터 취조를 받습니다. 심한 욕설과 고문을 당하지요. 그 중에는 당시 대통령 직속의 최고 권력기구였던 중앙정보부의 한 간부인 듯한 자가 있었나 봅니다. 그는 안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는 시인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댑니다. 이런 것들은 대한민국 법이 아깝다고 위협하면서 말입니다.
시인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습니다. 그 허무감에 참담한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자기 자신에 대해서 혐오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저주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처지를 달래고 추스르기 시작합니다. 먼저 자신의 구겨지고 상처받은 혼을 위로하지요. 위 시는 그런 심정의 일부를 나타낸 것입니다. 곧 이어서 시인은 보리는 밟아줘야 더 팔팔하게 솟아난다는 시어(詩語)를 구사하며 불굴의 전사(戰士)로, 혁명의 시인으로 나아갑니다.
김남주 시인은 1946년 10월 16일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김봉수 씨와 어머니 문일님 씨의 3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납니다. 중학교 과정까지는 고향에서 다녔고 1964년 광주제일고에 입학했으나 획일적인 입시위주의 교육에 염증을 느껴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대입 검정고시를 통해 1969년 전남대 영문과에 입학합니다. 영문과를 택한 이유는 당시 전남여고생들이 그 과(科)에 많이 들어온다는 이유 때문에 그랬답니다.

오늘 밤
또 하나의 별이
인간의 대지 위에 떨어졌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해방투쟁의 과정에서
자기 또한 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의 죽음이 헛되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다, 그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은
어머니인 대지에 스며들어 언젠가
어느 날엔가
자유의 나무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며
해방된 미래의 자식들은 그 열매를 따먹으면서
그가 흘린 피에 대해서 눈물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끄럽게 쑥스럽게 이야기할 것이다

1972년 10월 17일에 단행된 10월유신은 군부대를 동원하여 헌법기능을 마비시키고 반대편에 서있는 정치인들의 활동을 전면 금지시키면서 등장합니다. 이어서 2개월 후에 만들어진 유신헌법은 1인 독재체제를 제도적으로 합법화하는 반민주적 악법이었죠. 사법부와 입법부의 기능을 정권의 들러리로 만들었으니 오죽이나 했겠습니까. 한편으로 긴급조치권이라는 초헌법적 권한이 있어서 반유신 세력의 탄압도구로도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독제체제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개헌청원 백만이서명운도, 민청학련 시위, 언론자유수호운동,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 김상진 열사 양심선언, 31 민주구국선언, 남민전 운동 등이 그것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시작된 노동운동과 카톨릭 농민회로 대표되는 농민운동 등이 불을 지폈고, 북과 꽹과리와 민중가요가 등장하여 80년대 민중항쟁의 기수로 불리는 민중문화운동도 이때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이런 시대흐름의 한 켠에 시인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유신독재체제의 부당성을 최초로 폭로한 지하신문 <함성>과 이를 전국적인 투쟁으로 이끌기 위한 지하신문인 <고발>이 시인과 친구 이강을 중심으로 제작되고 배포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체포, 구속되어 10개월간 옥고를 치릅니다. 이후 고향인 해남과 광주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시를 쓰고, 의식을 다지다가 1978년 상경,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약칭 남민전)에 가입하여 사회변혁운동에 전면적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위 시는 시인의 신념과 확신이 넘쳐 흐르는 <전사2>의 끝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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