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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주 시인을 소개합니다(2)





   시는 변혁운동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준비하는 문화적 행위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회과학과는 달리 시는 생활의 구체성을 기초로 해서 변혁운동을 사상적으로 형상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시가 변혁운동에 복무하는 문학적 행위라고 해서 변혁운동에 종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와 변혁운동에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관계는 서로가 자기 존재의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상호침투, 보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신념과 확신에 찬 언어의 돋을새김, 덩그러니 빈 가슴을 당찬 시어(詩語)들로 채워주는 헌걸찬 감동, 거기에는 이런 확고한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문학관(文學觀)을 엿볼 수 있는 이런 글은 에세이집 속에 군데군데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시인은 다분히 정치적, 사회적 투쟁을 먼저한 분이었습니다만 시의 참다운 미덕을 온전히 갖고 싶어했습니다. 삶의 구체성, 민족, 현실 등 시대적 정서들을 대변하는 고유인자들을 곧바로 자신의 이념과 사상으로 체화(體化)시켜 남민전 전위대 전사로 행동했지만 이런 내용과 뜻을 글로 승화하는 시의 표현양식에 대해서 가슴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시가 갖는 고유성과 독자적 영역의 확보, 그러니까 이 분의 시 속에서 운율을 가진것이 많고 노래로도 불려진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겠지요.
한편 유신헌법에서 만들어진 긴급조치는 1974년 1월 일체의 헌법개정 논의를 금지하는 내용의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시발로 1975년 5월 유신헌법의 부정, 반대, 왜곡, 비방, 개정 및 폐기의 청원, 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절대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자는 영장없이 체포한다는 내용의 긴급조치 9호까지 선포됩니다. 여기서 긴급조치 9호는 1979년 12월 7일 폐기될 때까지 4년을 넘게 지속되는데 수많은 양식있는 지식인들과 재야운동가들이 투옥되는 민주주의의 수난기를 맞이합니다.
김남주 시인도 이 시기의 '남민전'에서 활동하다가 1979년 10월 14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체포됩니다. 10.26사태가 나기 12일 전이었죠. 검거되고 나서 시인은 '역사란 한순간에 역사적으로 결정되는구나'하고 생각했답니다. 이처럼 '남민전'사건은 당시 정부의 발표처럼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박정희의 생사(生死)에 따라 명암이 바뀔 수 있는 반체제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라틴아메리카 등 당시 제3세계의 사회변혁운동과 궤를 같이하는 움직임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8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구속된 시인은 15년의 실형을 확정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시인이 교도소 수감생활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개인적 암울함과 시대적 어두움이 같이 맞물려있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시대적 어두움이라고 알고있는 1980년대는 별로 낯선 일들이 아닌 왠지 익숙해져버린 과거의 시간이 돼버렸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민중항쟁이 있었고, 전두환정권의 제5공화국이 있었고,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한 결정체인 6월항쟁이 1987년에 있었습니다.
다 알만한 일들입니다. 이 알만한 일들의 시간들을 시인은 쇠창살로 만든 창문을 통하여 봅니다. 5월 광주의 참상을 듣고는 철창을 붙잡고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시를 씁니다. 정치범에게 펜과 종이가 허락치 않는 속에서 용케도 써댔습니다. 방 검열 때 걸리지 않도록 잘 보관했다가 감옥 밖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인이 없는 자리에서 세권의 시집이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과 청년들이 감옥에 있는 시인의 글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느샌가 학생들 사이에서 시는 노래로 만들어지고 불려졌습니다. 앞의 시 <노래>는 그런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오랜 시간 불려졌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땅이
   남의 나라 군대의 발 아래 있다면
   어머니 차라리 나는 그 아래 깔려
   밟힐수록 팔팔하게 일어나는 보리밭이고 싶어요
   날벼락 대포알에도 그 모가지 꺾이지 않아
   남북으로 휘파람 날리는 버들피리이고 싶어요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
   남의 나라 병사의 군화 밑에 있다면
   어머니 차라리 나는 그 밑에 밟혀
   석삼년 가뭄에도 시들지 않는 풀잎이고 싶어요

   우리가 이루어야 할 사랑이
   남의 나라 돈의 무게 아래 있다면
   어머니 차라리 나는 그 아래 깔려
   가슴에 꽂히는 옛사랑의 무기이고 싶어요

<조국>을 노래한 시입니다.
1988년 12월 21일. 시인은 투옥된지 만 9년 3개월만에 석방됩니다. 긴 시간이었지요. 참으로 오랜만에 맞는 광명의 빛이었습니다. 출옥하자마자 시인은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양심수 전원 삭방을 요구하는 각종 행사에 참여합니다.
이듬해 1월 시인은 눈물겹도록 옥바라지를 해온 남민전 동지인 박광숙씨와 광주에 있는 '문빈정사'에서 결혼합니다. 이제 일상생활의 시작입니다. 아들 토일이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소시민적 일상생활을 접어두고 시 창작과 문학의 제반 활동에만 전념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인간적인 행위는 자본의 비인간성에 저항하는 것이다"라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감옥에서보다 더 외롭고 어려운 싸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분의 시작(詩作)메모에는 감옥생활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본의 비인간적인 논리와 싸우기 위한 방편으로써 자신의 어떠한 직업도 마다할 각오로 살아간다고 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는 일이었겠습니까.
결국 시인은 삶과 시에 있어 절정의 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절망의 끝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내 심장은 십 년 이십 년
   바위 끝을 자르는 칼바람의 벼랑에서 굳어 있었다
   너무 굳어 있었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등성이를 타고 에움길 돌아
   종다리 우는 보리밭의 아지랑이 속으로
   가서 내 심장 춘삼월 훈풍에 녹이자
   그동안 몇십 년 동안
   때라도 묻은 것이 있으면 고개 넘어
   불혹의 강물에 가서 씻어내리고
   그러자 그러자 잠시
   찬바람 이는 언덕에서 내려와
   찔레꽃 하얗게 아롱지는 강물에
   내 심장 깊이깊이 담그고 거기
   피묻은 자국이라도 있으면 그것마저 씻어내고
   내 마음의 거울 손바닥만한 하늘이라도 닦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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