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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기-김남주 시인을 소개합니다






지금은 과연 변혁의 시대일까요.
2000년대를 눈 앞에 둔 90년대 말입니다. 저는 무엇이든 필요한 잡식성의 시대라고 봅니다. 서정주를 노래해도 되고 김지하를 노래해도 되고 김남주와 박노해를 노래해도 됩니다. 일렁이는 은빛 파도를 얘기해도 되고 러브호텔을 얘기해도 되고 분단된 철조망을 얘기해도 됩니다. 아니 얘기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컴퓨터에 내장된 프로그램을 쏙쏙 빼어내듯이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가만 보면 소비가 곧 능력을 인정받는 시대이잖습니까.
이래도 과연 90년대는 우리가 알고있는 7,80년대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비단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물음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대해서 시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그의 삶 속에서, 시 속에, 글 속에 변혁운동의 시대적 규정을 운운한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자기가 믿는 바대로 그냥 계속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소련과 동구라파가 붕괴되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흘깃 보았습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 봅니다. 너무 많이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에움길 돌아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종다리 우는 보리밭의 아지랑이 속으로 가고싶어 했습니다. 뒤를 돌아다보고는 많이 서성거렸습니다. 시집 <<사상의 거처>>에는 이런 서성거림의 자국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따뜻한 서정'이라고 말할 만한 시를 딱히 집어낼 수도 없습니다. 그건 분명 시인의 흔들림이었고 망설임이었습니다.
이 분이 만약 따뜻한 서정시를 썼다면 어떤 시인의 시풍(詩風)을 닮아갔을까요.
김용택 시인처럼 대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끊임없이 담아냈을까.
도종환 시인처럼 따스한 인간애를 언어적 겸손으로 표현해 냈을까.
아니면 자연에 대한 관조와 외경을 은은하게 형상화했던 박용래 시인을 닮아갔을까.
이 역시 어떤 시로 변화해 갔을지 집어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상상만 가능할 뿐입니다. 다만 <사랑은>은 그 단초(斷礎)를 제공해 줄지도 모릅니다.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녁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저는 김남주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멀찍이서 바라본 적도 없습니다. 보고싶어 찾아갈만한 용기가 생겼을 때는 이미 이 분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994년 2월 13일. 시인은 췌장암과 투병하다 49세를 일기로 고려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1994년 2월. 저는 한 소주방에서 있은 무의문학 정기모임 때 시인의 죽음을 알린 신문의 기사와 창작과 비평 영인본(1974년판 9권)에 게재된 처녀시들 중의 하나인 <鎭魂歌>를 복사하여 동인(同人)들에게 나누어주며 같이 시를 읊고 돌아가신 이의 뜻을 기렸습니다.
1996년 8월 13일. 서울의 동산방 화랑에서는 한국화가 김호석 님의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전시회가 있었는데, 근현대 인물 20명을 선정하여 그린 인물화에는 '보시다시피 나는'의 시와 함께 김남주 시인도 있었습니다. 저는 전시회의 첫째날과 마지막 날 그곳에서 그 분의 초상(肖像)을 보았습니다.
1996년 9월 21일. 예산문예회관에서는 예산푸른청년회 준비위원회에서 주최한 '춤세상'초청공연이 있었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일대기를 그린 <나의 노래> 공연이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시인의 일생이 춤과 극으로 승화되는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과연 이 분은 우리에게 있어 어떤 존재일까요.
저는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고민과 방황을 많이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그 실같은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시를 통해서였습니다. 가슴벅찬 이 명료한 시를 그냥 흘려만 보지 마십시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결성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장시집 <<침묵의 바다 파도가 되어>>의 조재도 시인은 <김남주>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썼습니다.

   그의 죽음을 기리는
   경기대학교 문학의 밤 행사장에서
   누군가 저기 걸려있는 걸개그림을 보라한다
   천길 벼랑을 가르는 장산곶매
   우린 그가
   화살처럼 솟구쳐 오른 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새가 갖는 상징에 대해 생각했다
   일신 영욕의 둥지 파헤쳐 버리고
   적을 향해 곤두박질친다는 전설의 새
   그는 그렇게 세상을 살았다
   어쩌면 그는 장산곶매 후예들의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땟국물과 흉터로 얼룩진 자본의 거리를
   배 터지고 느침 질질 흘리는 밤거리의 불빛을
   저항과 곤혼스러움에 살았다
   테 굵은 안경에
   서글픈 눈
   겨울 갈대처럼 성성한 머리칼에
   싸우다 떨어뜨린 매의 깃털 같은
   그의
   시편들

그렇습니다.
우리가 80년대를 살아오면서 그 분에 대한 각인된 인상은 "화살처럼 솟구쳐 오른 매"였고 "테 굵은 안경에 서글픈 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또 남북분단과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 어깨 위에 "싸우다 떨어뜨린 매의 깃털"로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도 함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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