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소'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나요?

by 이명옥 posted Jan 1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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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소 늙다리 농촌에서 30년 가까이 아이들을 갈르치고 있는 이호철 선생이 어릴 적 집에서 기르던 소 '늙다리'에 대해 쓴 글입니다.  




당신도 '소'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나요?
[서평] 이호철 선생의 <우리 소 늙다리>

    이명옥 (mmsarah)  


1932년생인 우리 아버지는 충청도 산골마을 출신입니다. 아버지가 살던 곳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에서 일명 '무치기'라고 불리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절간 같은 곳이었지요.

시골에서 그저 농사일이나 거들고 있던 아버지의 재능을 아끼던 누군가가 학교에 보내라고 했었나 봅니다. 땅바닥에 숯검댕으로 '하늘 천 따지' 천자문도 쓰고 한글도 익혔던 터라, 다행이 국민학교 5학년으로 껑충 뛰어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 국민학교를 마치고 합덕중학교에 들어가 월반해 중학교를 졸업한 뒤 아버지가 선택한 곳이 공주사범이었습니다. 지금 공주사범대학교의 전신이지요.

사범학교 입학금을 내야 하는데 깡촌에서, 그것도 형님 밑에서 밥을 얻어먹고 사는 막둥이가 돈이 있을 리 없지요. 우리 큰아버지 역시 팔아 치울 변변한 땅뙈기 하나 없었던 모양입니다. 큰아버지는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기르던 전재산인 소를 팔아 번 돈을 아버지 손에 쥐어주고는, 우리 아버지를 죽지 않을만큼 두들겨 팼다고 하더군요.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랍니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전재산인 소를 팔아 동생 월사금을 준 큰형님 덕분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야간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까지 마친 뒤 대학 입시 부교재를 낼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랄까요?

아버지는 가끔씩 "형님이 말이야. 소 팔아서 나 사범학교 보냈잖아. 그 때 죽지 않을 만큼 맞았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시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아버지는 전 재산을 막내 동생을 위해 내놓긴 했지만 소 한 마리 없이 척박한 산골 밭을 갈며 대식구를 먹여 살릴 일이 참 암담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큰집이었던 큰아버지 댁에는 유독 군식구들이 많았거든요. 저만해도 방학 내내 큰집에 가서 살았으니까요.




'워낭 소리'와 '늙다리'

오는 15일에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합니다. '워낭'이 뭐냐고요? 소의 목에 달린 동종을 말하는 것이지요. <워낭소리> 주인공은 팔순의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와 사람나이로 치면 마흔살이나 된 늙은 암소라는군요.

늙다리. 우리 암소한테 동네 어른들이 붙여 준 이름입니다. 늙다리는 나이도 많고 깡말라서 엉덩이뼈가 툭 튀어나왔습니다. 눈에는 눈곱도 끼어 있고 엉덩짝에는 똥 딱지도 더덕더덕 붙어있고요. 움직이는 것도 어찌나 느린지 속이 답답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일은 꾀부리지 않고 곧잘 하지요. 비쩍 마른 몸으로도 못해내는 일이 없거든요. 서 마지기가 넘는 논도 혼자서 끄떡없이 간 답니다.

"그래 잘한다! 어여 가자! 끌끌끌…."

아버지가  추임새를 넣어 주면 목을 앞으로 쑥 내밀면서 어찌나 씩씩하게 발을 내딛는지 보는 사람이 다 힘이 납니다.



그런데 그 <워낭소리>의 주인공같은 소가 실제로 있었지 뭐예요. 이호철님이 쓴 <우리 소 늙다리>인데요. 이 글은 지어 낸 동화가 아니라 실제로 이호철님이 어린시절 집에서 기르던 늙은 소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글을 쓴 이호철님 역시 늘 소를 돌봐야만 했어요. 꼴을 베는 일, 소에게 풀을 뜯기는 일, 쇠죽을 쑤는 일, 작두로 여물을 쑬 짚을 써는 일이 모두 호철 자신의 일이었으니까요. 한참 친구들과 어울려 놀 나이에 소꼴을 베고 쇠죽을 쑤는 일이 때로 귀찮기도 했겠지요. <우리 소 늙다리>에는 그런 모든 일들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답니다.

농촌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소에게 풀을 뜯기는 일은 사실 대부분 아이들의 몫이었지요. 호철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늘 소에게 풀을 뜯겼는데, 하루는 늙다리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풀을 뜯다보면 공동묘지까지 가게 됩니다. 그런데 호철이네 소인 늙다리와 수송아지가 내려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친구들은 모두 자기네 소를 몰고 내려간 상황. 호철은 무서움을 무릅쓰고 공동묘지 근처까지 가 늙다리와 새끼 수송아지를 찾습니다. 화가 난 호철은 늙다리의 고삐를 바짝 잡아 소 주둥이에 발길질을 퍼붓다 돌맹이로 때렸다고 하는군요. 소의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놀란 호철은 그때야 정신이 들어 후회를 하지요.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으려고 막 숟가락을 들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외양간에 깔 풀을 넣어주다가 늙다리 코를 보았습니다.

"야야,  호철아, 우리 늙다리 코에 와 이래 피가 묻어 있노?"

"……"

나는 더럭 겁이 나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앉아 있었지요.


"야아, 와 대답을 몬 하노. 으아? 우리 늙다리가 어디 받쳤나? 누가 때렸나?"

아버지는 성이 나서 나를 다그쳤습니다.

(중략)

"늙다리가 남의 밭에 들어가서 주인한테 오지게 맞은갑네."

"우리 늙다리는 남의 밭에 잘 안들어가는데 우예 그랬노?"

그 소리를 듣더니 아버지는 또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아무리 소가 밭에 들어가도 그렇제. 즈거놈 새끼들이 이래 맞으마 우예 되겠노! 이기 그래 사람이 할 짓이가? 세상천지 이기 뭐꼬! 호철아. 이눔 짜석 빨리 말해 봐라! 도대체 언놈이 그랬노?"

아버지는 한참을 그렇게 소리 지르더니 말없이 늙다리 주둥이를 쓰다듬었습니다.

나는 밥이 목구멍에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숟가락을 놓고 몰래 밖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집 앞 개울에서 세수를 한 번 하고 바위에 걸터앉았지요.

"내가 왜 그랬을꼬. 쫌만 참았으면 되는 긴데… 우리 늙다리, 병나는 건 아니겠제?"

저 아래쪽 마당에서 아이들이 무슨 놀이를 하는지 즐겁게 뛰어 놀고 있는데,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친  호철은 일어나자마자 외양간으로 달려갑니다. 호철을 본 늙다리가 벌떡 일어서자 호철은 자기를 떠받으려는 줄 알고 뒤로 물러서지요. 그런데 늙다리는 목에 걸린 워낭소리가 딸랑딸랑 시끄럽게 울리도록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며 호철을 맞이합니다. 호철은 미안한 마음에 그날 하루 만큼은 늙다리가 똥을 철퍼덕 철퍼덕 누어도, 논둑길을 지나며 벼 몇 포기를 슬쩍 잘라 먹어도 눈을 감아 주었다고 하지요.



**농촌에서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요. 우리나라는 육식을 위주로 하는 서구의 여러 나라처럼 순전히 식용을 목적으로  소를 기르지 않았지요. 옛날에 농촌에서 소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고 재산 목록 1호에 해당하는 귀한 존재였거든요. 특히 농부들은 많은 시간 소와 생사고락을 같이했지요. 그러니 소를 애지중지 한 것이 다만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쟁기를 끌며, 또 나락을 나르며, 하루 종일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소는 더없이 좋은 친구이자 동료로 말없이 위안을 주는 존재였을 테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요? 소는 더 이상 가족 같은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고기를 대 주는 식량일 뿐이지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좁은 장소에 소를 가둬두고 동물성 사료와 호르몬제를 먹여 기르는 육축소는 옛날 우리 농촌의 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겠지요?

비록 예전처럼 소와 사람이 서로 애정을 확인하며 교감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풀이라도 자유롭게 뜯어 먹으며 자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더 깊어지네요. <워낭 소리>라는 소와 반평생을 함께 하며 애정을 나눈 다큐멘터리를 본다면 이호철님이 풀을 뜯기고 꼴을 베어 먹였다던 <우리 소 늙다리>가  더욱  생각날 것 같군요.



덧붙이는 글 | <우리 소 늙다리>는 이호철님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쓴 글입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는 강우근이 구수하게 그림을 그렸고 '보리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출처 : 당신도 '소'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나요?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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