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아이야 조금 세상이 힘들게 하더라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한다

by 장경태 posted Mar 2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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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를 보낸 1시쯤, 지하철 역사 셔터를 내리는 데 저쪽에서 부역장님이 한 아이를 데리고 온다. 이 늦은 시간에 동네 슈퍼 심부름 보낸 모습의 간단한, 그렇기 때문에 밖에 나가면 분명 추울 그런 복장의 여자아이가 역무원의 손에 이끌려 승강장에서 올라오는 것은 정상적인 풍경이 아니다.

집이 어디니,
신사역 주변이예요. 이상타. 어느 동이라고 말하지 않고,
얘 엄마나 아버지에게 우선 연락해야 할 텐데, 그래 아버지는 뭐하시냐,       주무실거예요.

친척집에 놀러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늦었다는데, 청소아줌마 말씀은 여자 화장실에서 자고 있었다는 거고, 선배님은 1시간 전에 표를 사갔다는 걸 보면, 어디 가야할 곳이 없어서, 아니면 가면 안되기에 지하철 역 여기저기를 헤메였던 거였다. 그러다 이렇게 막차를 보내버렸고, 이제는 정말 가야할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 역시 그 조그만 아이를 밖으로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인적사항이라도 알아내려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분명치 않고, 찬바람에 내놓은 강아지마냥 바들바들.

부역장님 안돼겠어요. 우선 역무실에 들어가서 쉬게 하면서, 부모연락처를 알아보고, 안되면 경찰서로 연락을 하던지 하고, 우선 몸부터 따뜻하게 해야 되겠어요.

역무실에 오니 동료들은 다 안타까운 표정과 걱정스런 관심들을 보낸다. 밥은 먹었냐? 학교는? 밥도 안먹었고, 학교는 가다 안가다 한다는 15살 여자아이의 가족풍경이 어림풋하게 들어온다. 얼마나 답답한 일이 있었으며 이렇게 굶으면서 지하철 주변을 돌아다녀야 할까.

우선 부역장님 심심할 때 소주안주로 삼으려 둔 컵라면을 끌여 먹이고, 모두들 아이를 걱정하는 사이 경찰관이 왔다.

마음이 넉넉하게 생기신 그 분들도 역시 딱한 마음을 들어내면서,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감에 대해 푸념들을 늘어놨다. 그 푸념들은 아이에 대한 안스러움에서 자연스럽게 나왔고, 이런 아이들이 이곳 저곳에서 떠돌지만 책임지지 않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었을 것이다.

그 눈이 순한 착한 아이가, 세상이 그렇게 험한 것만도 아니라 자기를 걱정해주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잘되길 바라는 어른이 많다는 것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디 그 아이의 인생길에 험악한 것이 가로막아 슬픔과 한과 원망으로 인생이 채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나의 바람과는 상관 없이 우리 사회가 사람에게 온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미안할 뿐이다.

그저 오늘 밤만이라도 친절한 경찰관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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