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타고 명주 갔다 온 이야기 -중편-

by 정한진 posted Mar 31, 200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강릉 북쪽으로 삼십 리쯤 되는 곳에 사촌(沙村)이 있다....(중략) ...개울 동쪽의 산줄기는 오대산 북쪽으로 부터 용처럼 꿈틀 거리면서 내려오다가, 바닷가에 와서 모래로 된 화산수가 우뚝 솟았다. 그 아래에 예전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개울이 엇갈리는 곳 그 밑바닥에 늙은 이무기가 엎드려 있었다. 신유년(1561) 어느 가을날, 그 이무기가 그 바윗돌을 깨뜨리고 가버렸다. 그 바위는 두 조각이 난 채 속이 텅 비어 마치 문처럼 되었으므로, 사람들이 교문암(蛟門巖)이라고 불렀다....(중략)... 나의 외할아버지 참판공(김광철)께서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다 터를 잡고는 그 위에다 집을 지었다. 새벽에 일어나 창을 열면 해뜨는 것이 보였다. 공께서 그 어머님을 모시고 노년을 맞이했으므로 이 집에다 애일당(愛日堂)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허균 애일당기-
(주: 愛日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는 뜻인데, 효자가 부모를 오래 모시고 싶어하는 마음을 비유한 말임)

그 옛 터에 애일당은 흔적도 없고, 허균의 시비만이 외로이 서있었습니다. 차분히 설명을 덧붙이는 유선기 선생의 청아한 목소리만이  주위의 괴괴함과 어울려 하나가 되고 있었습니다.

언덕 아래 바닷가 모래 사장위에 우뚝 선 교암은 애일당 터 와는 분명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흔한 바닷가 바위와 크게 다를바 없지만, 그 옛날 허균의 자취가 깃들여서 일까. 아니면 바위를 두 동강 내고 어디론가 떠난 이무기 때문일까... 바위에 부딪치며 우렁찬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동해의 파도를 바라보며 일행들은 잠시 할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성옹이란 어떤사람인가
내 감히 그 덕을 찬송해 보려네
......      (중략).......
어리석고도 무식하기에
형벌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비웃음을 받아도 슬퍼하지 않네.
남들이야 헐뜯든 꾸짖든 내버려 두고
자기야 나름대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네.
그대 스스로 덕을 기리지 않는다면
그 누구라서 그대를 칭송해 주리오
성옹(惺翁)이란 그 누구신가
허균 단보가 바로 그일세.
                                             -  허균  성옹송(惺翁頌)-

어떠십니까? 그의 넉넉한 마음과  호탕한 기상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성옹이란 허균이 스스로 지은 호인데,
'온 세상이 어지러운데 혼자 깨어있는 늙은이'
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어지럽고 깨어있기는 힘들지요.  세파 때문입니다.

일찍이 고대 중국 초나라의 시인 굴원은 <어부사>에서 " 온 세상이 다 흐렸는데 나만 홀로 맑으며, 뭇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었다. 그래서 내어쫓김을 당했다"라며 절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굴원의 절규 보다는 허균의 호방함에 더 마음이 갑니다. 다 아시다시피 그는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네! 세파에 맞섰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근대 선종의 개창자인 경허스님은 깨달음을 얻은 뒤 첫 법회를 속가의 어머니를 위해 열었습니다. 그 때 경허는 대중들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없이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일어섰습니다.
" 어머니, 저를 보십시오."
어머니 조차 겉모습에 걸려 넘어져 " 내 아들이 견성했다더니, 미쳐버렸다"며 법당을  뛰쳐나갔습니다. 모두가 경허의 겉모습을 재단할 뿐이었습니다. 이 때 경허는 이렇게 사자후를 토해 냅니다.
"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어 있구나"
경허는 그 이후 세상으로 나가  화광동진(和光同塵)함으로써 깨달음과 세파에 맞서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고 갑니다.
('화광동진'이란 노자 제56장에 나오는 구절로, 자기의 지혜와 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인과 어울려 지내면서 참된 자아를 보여준다는 뜻)

비단 허균과 경허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시간에도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꼿꼿하게 맞서는 기상'으로 '깨어있을' 뿐만 아니라 '화광동진'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교문암을 바라보던 그날, 더불어숲 나무님들도 마음 속에서 허균과 경허를 만났음에 틀림없습니다.

화제가 옆으로 새는 느낌입니다만 지난 3월초 봄비가 부슬부슬 오는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누군가와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렬해서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은 막연히 사람을 그리워하는 나의 타고난 태생적인 외로움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필두 선생과 김우종 선생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사실 박영섭 선생이 원인 제공자인데, 그것은 '워낭쏘리'라는 영화 만큼 울림이있는 글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번거로운 절차는 필요없었습니다. 그냥 만났고, 그냥 마셨고, 그냥 좋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를 사로 잡은 것은 그냥 고맙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 분들의 얼굴에서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꼿꼿하게 맞서는 기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도착한 날 답사의 마지막 행선지는 강릉 문화의 정신적 원류가 시작된 곳 중의 하나인 '굴산사지'였습니다.
병풍같이 둘러선 백두대간의 고산준령을 배경으로 하고, 동해 바다로 달리는 넓은 평야를 전망으로 삼으며, 하늘을 향해 서있는 거대한 "굴산사 당간지주"는 여전히 위풍당당했습니다.
산과 들과 바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당간지주!
그런데  신비롭고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사람마저도 대자연의 하나로 환원시키며 '인간과 자연을 융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입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이렇게 느낀 것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이렇듯 대자연과 하나가 된 사람들의 그 모습이 어찌 아니 아름답겠습니까?

몇 분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난 내공 깊은 또 한 분의 방외지사 김석남 선생님 입니다.

유선기 선생이 허난설헌 생가에서 우리에게 소개를 한 분입니다. 유선생의 선배님이시고,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학생이 아닌 '어른들과' 뜻이 맞지 않아서 ,지금은 문화해설과 고장의 문화에 천착하신다는 분이었습니다. 2006년에 더불어 숲 나무님들이 강릉을 방문했을 때도 도움을 주신 경험이 있었답니다.
처음 인사를 나눌때 자전거 짐칸에 싣고온 한 말짜리 플라스틱 물통이 인상적이었는데, 저희들에게 주문진 "탁주"를 대접하기 위해 손수 준비하셨고, 유선생과 직접 양조장에 가서 탁주 한말을 받아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동안 조용히 계시던 김선생님께 유선생이 "굴산사 당간지주"에 대한 해설을 부탁하자, 겸연쩍어 하시면서 시작한 설명.... 그런데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깊이있고 조리있는 설명은 적어도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다른 나무님들의 표정도 진지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자기 골이 띵~~~ 왜냐고요?
김 선생의 겸손함 때문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으면  금방 아는체 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굴복하는 저 같은 사람과는 애초 부터 부류가 다른 분이었습니다. 다음날 헤어질 때 까지 함께 한 김선생 덕분에 저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간지주에  절을 올려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나서 주문진 탁주를 음복(?)했는데 빨리 숙소로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왜냐고요? 일단 한 번 드셔보시라니깐요?!!^^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