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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의 단골 주제 중에 하나는 취업에 관한 것이다. 한국의 고실업 상황은 이미 하나의 분명한 사회 형태로 굳어져버렸다. 이태백, 사오정, 같은 단어들이 생긴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며 이제는 이런 수사적 표현들마저 싫증이 날만큼 식상해진, 실업은 그야말로 일상이다. 당장 나 역시도 이 사회적 문제의 당사자이고 하니 취업과 관련된 담론에 대하여 나름의 사유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적어본다.



욕망과 불안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를 포함하는 20대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두가지 정도 꼽으라면 '욕망'과 '불안'이다. 욕망과 불안이 무슨 이데올로기까지야 하겠느냐 할 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욕망과 불안은 철저히 이데올로기처럼 존재한다. 욕망과 불안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한 문장으로 나를 포함한 세대를 설명할 수 있는데 표현하자면 이렇다.



'멋진 자동차, 좋은 집과 같은 객관적인 물질 소유에 대한 '욕망'은 강하나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작아짐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불안'에 휩싸인 세대'



작은 중소기업에 들어가자니 그 곳의 월급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물질적 충족을 이룰 수 없겠고, 대기업을 바라보자니 너무도 경쟁이 치열하여 쉬이 취업하기가 어렵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덧없이 나이만 먹으니 청년의 삶은 점점 '불안'에 빠져든다. 이게 지금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일단 지금의 인플레된 학력자들을 모두 수용 할 만한 연봉 빵빵한 대기업의 일자리가 충분히 늘어날수 있는 게 아니라면 결국 오늘 날의 젊은이는 자신의 욕망을 꺾고 몸은 수고롭고 댓가는 적은 현실과 타협하여 살거나 아니면 기약없는 미래를 꿈꾸며 부모님께 기생하는 비루한 삶을 유지하는 것 뿐이다.



이처럼 각 청년 개인에게 주어진 한국의 객관적 상황은 그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긍정적인게 없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경쟁에 승리하여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무원이 되는게 그나마 개인이 자신의 욕망에 걸맞는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일 텐데 대체로 경쟁이란 것이 그렇듯 승리자보다 패배자를 더 많이 양산한다. 특히 한국의 고용 상황을 보면 저마다가 각자도생하는 전략을 취할때 이 중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면 살 수 있는 자는 매우 소수다. 결국 한국의 청년들은 '욕망'과 '불안'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행복의 조건



인간의 삶이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할 때, 그리고 취업이라는 것 역시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때, 우리는 직업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날 아고라의 토론방만 보더라도 그렇듯이 취업 담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연봉'이 자리잡고 있다. '좋은 일자리 = 편하고 돈 많이 버는 직장'이 거의 공식이다. 여기에는 수구꼴통과 촛불세력이 따로가 아니다. 적어도 행복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돈(물질)'은 정치적 이념성을 압도한다. 한국의 삶에서 좋은 삶의 기준은 '벌이와 씀씀이'이다. 얼마나 많이 벌어서 얼마나 많이 낭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좋은 삶을 재는 척도다.



그러나 모두가 물신화에 경도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은 나올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모두가 풍족하게 누릴수 있는 물질의 양이 존재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늘 날의 풍요는 단순히 '생존을 유지하고 남은 여력'을 넘어 상대와 비교하여 판단 되어지는 물질량의 상대성에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상대적 빈곤'이라는게 바로 그것이다. 오히려 이런 물신화의 경향은 기존 사회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만들어 냈다.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자동차의 부재를 불편으로 느끼지 않았으나 오늘 날에는 거의 모두가 자동차를 소유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은연 중에 '자동차 없는 불편'을 강요 받는다. 끊임없이 '불편'이 종용되는 자본주의적 특성으로 인해 그 속의 인간들은 '불편'이 제공하는 '불안'을 감지한다. 사실 '불편'은 '불행'이 아님에도 '불편'은 '불안'으로 발전하고 '불안'은 다시 '불행'으로 발전한다. 이로써 나아가 우리는 '불편'을 인간이 불행한 이유로 단정하는 집단적 허위의식을 갖추기에 이르는 것이다.



지금 모든 취업 담론이 사실상의 '연봉담론'이 되고마는 것도 이런 자본주의적 사고의 타성 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에 행복을 보장하는 것 중 안정된 소득은 분명한 필요 조건이기는 하나 충분 조건은 아니다. 물론 삶의 안정을 담보해 주지 못하는 한국의 전반적 사회구조를 별도로 지적해야하는 것은 분명한 것이지만 그에 앞서 행복의 충분조건에 대해 아무런 고려가 없었던 우리의 자화상을 되돌아 봐야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지금 취업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좋은 직장의 문화나 합리적 생산관계 등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지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대체로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에서 기인한다. 인간적인 인간관계가 튼튼한 개인일수록 행복한 법이다. 한 개인의 삶은 노동으로 채워지고 그 노동의 현장인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같은 문제는 행복과 관련하여 연봉 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철저히 조각난 개인의 입장에서 이런 사회적 관계는 망각한 채 자신의 물질적 소유욕을 충족하는 것만이 마치 행복의 절대적 조건인냥 착각하고 있다. 이런 그릇된 행복의 조건에 매몰된 파편화된 개인들의 군집에 불과한 한국의 상황은 '바보' 와 '나쁜 놈'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행복하다 느낄수 없는 사회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생존의 욕구




욕망과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은 비단 청년들 뿐만이 아니다. 이미 한국 사회의 모든 계층은 욕망의 사로잡혀 불안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래서 욕망과 불안을 특정 세대의 것으로 한정지어 놓는 것은 잘못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 욕망과 불안이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빚어내는 정량화된 인간상이다. 그래서 마치 인간의 욕망 자체를 문제삼아 청년세대를 '욕심은 많고 능력은 모자란 세대'라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다만 87년 이후 자본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시기에 성장한 세대인 청년에게서 그러한 특징이 좀더 두드러지는 것 뿐이다. 더구나 오늘날 청년 실업의 문제는 엄밀히 말해 욕망보다는 불안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우습게도 한국의 청년세대는 자신들의 욕망과는 별개로 굉장히 평범한 삶을 꿈꾼다. 자신이 성장해 온 환경을 유지하는 정도, 아버지세대가 누렸던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가정을 꾸리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엔 당연하게 주어지던 평범한 삶의 형태가 이제는 투쟁하여 쟁취해야만되는 대상으로 격상 되어버렸다. 나이 30에 빚없이 자기집을 가지는게 불가능해졌고 결혼하여 아이를 둘 정도 키우는 일은 자신의 삶 전체를 저당잡히고도 장담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개인의 욕망을 문제 삼는 것과는 별도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데 요구되는 필요조건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멋진 외제차 같은 비현실적인 욕구를 가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생존의 욕구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청년세대는 철저히 '물질'에 한하여 리얼리스트가 되었고 가슴 속엔 정말로 불가능한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부재



멋진 외제차같은 물질에 대한 그릇된 욕망은 계도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라면 자본주의를 고쳐서라도 극복해야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인 생존에 대한 열망은 보장되어야 한다. 오늘날 청년 세대의 또다른 특징은 꿈이 없다는 것이다. 이 꿈을 대신하여 자리잡고 있는게 포르쉐, 람보르기니같은 외제차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꿈이 없으니 도전이 있을 수 없고, 자꾸만 안정적인 삶에만 더 집착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청년이 꿈을 잃은 것은 다분히 한국 교육의 잘못이다. 맨날 국영수 펴놓고 암기만 하는데 여기서 무슨 꿈이 생기겠는가? 그리고 열악한 사회안전망도 이런 '안전빵 지상주의'를 더욱 부추긴다. 그리고 꿈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우울한 것은 꿈을 상실한 것에 대한 분노마저 없다는 것이다.



무상교육,무상의료같은 누구나 한번쯤 이야기를 들으면 부러워하는 유럽의 복지제도는 사실 68혁명의 성과물이다. 우리는 늘상 돈이 없는데 우리가 무슨 복지국가를 할 수 있겠냐는 듯이 말하지만 유럽의 이런 모습은 지금의 우리나라 국민총소득보다 못미치는 수준에 있을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의지다. 이 의지는 바로 68혁명 당시 청년들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그들은 분노로 바꾸었고 결국 오늘날의 유럽을 만들어 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하숙집 주인과 성관계를 맺어야 했던 당시의 그들 상황은 지금의 한국과 비교하더라도 여러모로 비슷하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청년들의 불만은 결코 사회를 향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 탓으로 돌려서 스펙쌓기에 올인하거나 고작 경기가 나뻐서라는 식의 식상한 시절을 탓을 할 뿐이다. 너무 잘 길들여져 버린 탓이다. 그래서 꿈도 없고 도전도 없고 분노마저 없다.



각자도생



청년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구인자들 말대로 눈을 낮추는 것도 아니고 인생 선배라는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적당한 처세술을 체득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자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이를 개인적으로 극복할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실업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사회문제다. 지금의 사회적 구조 아래에서는 결코 개인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 때문에 지금의 청년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행동은 정치투쟁이다. '정치는 더러운 것, 정치에 신경끄고 사는 내가 킹왕짱' 같은 사고 방식에 오래 갇혀 있을수록 자신이 현재의 겪는 그 답답한 삶도 연장된다. 자본은 노회하다. 죽을것 같은면 숨쉴 공간을 터준다. 즉 구성원이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려는 직전의 상황을 마지노선으로 놓고 적당히 상황을 조율한다. 그래서 한국의 68혁명은 유럽의 68혁명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도 방법은 하나뿐이다. 저마다 각자도생의 길을 끝내고 '공동체''공화국'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 뿐이다.



앞만 볼게 아니라 옆을 둘러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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