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을 뒹굴다가

by 장경태 posted May 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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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아 무력함을 끌어안고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나절 자전거에 올랐다.

우리 동네 역곡역, 임시로 차려진 분향소에 들르니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인사를 위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퇴근길의 사람들, 일부러 왔는지 꼬마아이 손잡고 서 있는 젊은 엄마, 교복입은 중학생들, 할아버지 할머니 연령과 계층을 초월한 사람들이 저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안고 서 있다.

방안에서 무력감에 뒹굴 뒹굴, 그러다 눈물 찔끔거리며 틀어 박혀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의 작은 손에 흰 국화송이를 쥐어주고 서 있는 젊은 엄마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위해 줄을 서고, 절을 올리고 나니 그래도 우울함은 조금 가셔지는 듯 하다. 그러면서 오기전에는 없었던 공동의 정서적 위로와 연대감 같은 어떤 힘이 내 몸에 달라붙는 듯 싶다.   

심란한 마음은 책상을 떠나있고, 사무실을 떠나 공부를 해도 일을 해도 한 것 같지 않았던 그 마음들의 주인들이 곳곳의 분향소에 이렇게 모이는 것이 바로 우리의 희망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처연한 마음으로 분향소로 발길을 향하게 만드는 것은, 나날이 영혼없이 살기를 강요하는 부박한 이 시대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으면 하고, 이웃의 슬픔에 공감할 줄 알고, 죄 저지르지 않으며 착하게 살고자 하는 각각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는 근원적인 '인간됨'이다.  

이러한 인간됨의 근원들을 무시하면서, 맨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선진화, 효율성, 경제발전, 반값 등록금, 신혼부부 보금자리, 실업률도 줄이고 경제 성장할 수 있다는 대운하 등등의 입에 발린 거짓말에 지겨워,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묻어두었던 착한 심성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런 제도가 있음을 설명하고, 선택여부를 학부모에 알리는 편지를 보낸 선생님들로부터 어린 아이들을 떼어놓는 비교육적인 만행, 우리의 공동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걱정된 마음에 올렸던 글에까지 검찰을 동원하여 칼을 들이대어 입을 틀어막는 오만으로 뭉친 정부, 자기들이 죽여놓고 철거민들에게 책임을 뒤집어 쒸우는 공정성을 팽개친 권력기구, 거대한 반대의 저항 앞에선 반성하는 척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이름을 바꿔치기 하여 삽질에 여념이 없는 무지하고 비열한 정부.

학교 직장 지역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숨어있던 리틀 2MB들이 부활하여 우리를 영혼 없이 살도록 강요하고, 입을 틀어막고 속을 긁어대는 이 소통불능의 시대에, 궁하면 이리 말을 바꾸고, 논리가 없으면 묵묵부답, 합당한 요구에는 자동응답기 마냥 되풀이되는 뻔뻔한 거짓말의 이 시대에 국민과 늘 가까이 하려했던 그의 진정성을 몰라보았던 우리 스스로가 미안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물욕이 불러낸 저 괴물과 수족들에 의해 처절하게 물어뜯기는 그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였고, 그가 힘들 때 함께 있어주지는 못할 망정 손가락질하다가 보낸 것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이런 미안하고, 안타깝고, 서럽고, 분하고, 슬픈 그 마음들이 백만이 되고 수백만이 되는 것이다.

그는 죽어서 잠시 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우리 모두의 고운 심성을 찾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반성하게 하고, 살아가는 데는 돈이 아닌 더 중요한 인간적인 존엄과 영혼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 새삼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숙제를 안기고 떠난 바보 노무현대통령의 영혼이 그 세상에서는 평안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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