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뛰어넘는 진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할듯

by 김동영 posted May 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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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 단오절 연휴다.

중국의 단오절 휴일은 작년부터 시행이 되었는데, 올해는 주말과 가까운 단오절 날짜 때문에 징검 다리인 금요일은 쉬고 일요일은 출근을 하는것에 대한 중앙 정부의 정식 공문이 내려왔다.(강제 사항은 아니나 상당수 기업들이 이 권고를 지킨다.)

이벤트성 연휴가 생기면 나같은 전자제품 판매회사 사람들은 죽어난다. 가전 유통들이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가격을 치고 판촉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때 유통들과 짜웅해서 물건 못팔아 내면 그건또 고스란히 내 판매실적 부족의 원인이 되어 버린다. 판매 실적이 부족하면?... 뭐 회사가 나를 여기로 파견한데 대한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가 없어져 버린다고 해야 할까나?-_-

내가 있는 이곳 광저우의 단오, 연휴 내내 비가 내리고 있다.

중간중간 매장을 돌다가 사무실 혹은 집으로 복귀하며 인터넷을 점검한다. 지난주 까지는 몇년전 무모하게 시작했던 주경야독 대학원 공부의 마지막 결과물인 논문 써낸다고 사무실 안나가는 주말과 휴일 내내 어두운 방에 짱박혀서 갑갑하게 시간을 보냈었다. 주중과 주말의 바쁜 이중생활(?)을 부지런히 해낸 덕분에 지난 주말 논문 초안을 지도 교수님께 이메일로 쏴드리고 이번 단오 연휴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넷 웹서핑을 즐기며 계속 특정 소식을 모니터링 할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을수 있었다.

내가 계속 들여다 보고 있는 기사... 바로 노무현 대통령 관련 소식 들이다.

지난주 토요일 사무실에 출근 했다가 철홍 선배님 결혼소식 관련 부탁할것도 있고 해서 한국에 있는 형호한테 전화를 했었다. 전화해 보니 형호 첫마디가 '형 그거 알아요?' 였다. 노무현 대통령 소식 아느냐는 얘기였다.

전화로 처음 내용을 전달 받은뒤 정말로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주말이 끝나고 회사에 출근한후 단오절 프로모션 준비 때문에 온통 에너지를 뺏기고 난후 목요일 쉬는 날을 맞아 작심하고 인터넷의 이내용 저내용을 들여다 보니 한국 분위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토요일에 비해 며칠간 상당히 더 우울하고 슬퍼져 있더라는 얘기다.

그 많은 인파들과 슬픔들을 쳐다 보다가 문득 좀 생뚱맞은 질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사람들 지난 대선때 다들 투표 했을까?'

노무현과 관련된(혹은 관련되어 있는듯이 보이는) 후보를 찍었느냐? 아니면 이명박을 찍었느냐?와 같은 이분법 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그냥 '저사람들 투표는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나?'라는 더 유치 하면서도 원초적인 궁금함이었다.

지난 대선 투표율 63%... 역대 최저였다고 한다.

정말 투표하기 힘들었던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그냥 의무와 권리를 방기하고 그날 놀았다는 얘기다. 무슨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 거부권도 있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황당한 얘기도 해가면서 말이다.

작년 한해를 뜨겁게 했던 촛불 시위가 시민 사회의 어떤 자발적 불만 표출이고, 그 불만의 원인이 상당히 광범위한 대상들로부터 작동 됐다는 점을 감안 한다면, '정치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관심 표현은 분명히 촛불에 대한 집중력과는 다른 형태의 관심이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즉,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이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는, 그 정치인 노무현이 걸어온 시간들에 대한 이해와 역경을 공감하고 그 방향이 옳았다는, 혹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하의 애도 표현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건 촛불 보다도 훨씬 더 정교해야 하며 어찌 보면 분명하고도 정확한 스스로의 생각의 인식이 바탕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시니컬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끝나고 일부 강북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집근처 고등학교에 진학 시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합리에 대해 단체적으로 성명을 발표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사는곳 근처로 과학고나 자립형 사립고가 들어오게 되면 자녀들이 근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하고 타지역이나 외곽 경기도로 진학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부터이다.

이 학부모님들, 원래 본인들 사는 지역에 좋은 학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교육열 올라가고 좋은 대학 보낼수 있고 무엇보다 집값 올라갈것 같아서 적극 찬성했던 분들도 계신다. 자기 자녀들 집근처로 고등학교 못보낼것 생각도 못하고 말이다.

도대체 상당부분 돈으로 돌아가는 작금의 교육 상황에서 좋은 고등학교가 집근처에 있으면 자연 스럽게 자신들 자녀들도 좋은 대학 보낼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판단의 근거가 뭘까?

강남 논리를 가지고 선거에 뛰어든 공정택의 논리를 강북에도 그대로 대입 시킬수 있다고 잘못된 판단을 하셨던것(일수도 있는것)이다.

이분들이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투표 했을까?

모두들 알다시피 강북의 투표율 강남에 비해 10% 넘게 떨어 졌다고 한다. 참고로 강남은 공정택 몰표였다...

작년에 용산 참사때 돌아가신 분들 가족들중 상당수가 이명박 대통력 찍었단다. 그냥 이명박 찍으면 '뭐 좀더 좋아 지겠지.'라고 순진하게 생각들 하신거다. '뭐 좀더 좋아진것'들이 과연 뭘까? 철거에 항거하는 시민들에 대한 테러 진압용 특공대 투입인가?

왜 이런 엇박자와 비극이 생기는 걸까?

간단하다.

세상을, 또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명확한 '인식' 없이 그냥 '감정'으로만 해서 그렇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금 노무현 보면서 우는 사람들 상당수, 어쩌면 '감정'이라는 즉흥적 느낌을 즐기고 있는 걸수도 있다.

안스러움? 뭐가 안스러울까? 그의 정치적 소신이 꺾인것이? 그의 정치적 소신의 근거가 뭐였는지 관심이나 있었나? 노무현의 지나온 시간들을 잘 알고는 있나?

그냥 솔직히 말하자. 잘 모르지만 그냥 불쌍한것 아닌가? 한명의 자연인 노무현이 안됐다라고 느껴 지는것 아닌가?

그 느낌이 인간 본성의 '측은지심' 이라고 하면 그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중요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도 그 '감정'의 휘발성이 가지고올 향후 상황의 허탈함이, 그리고 그것을 또 이런저런 선거나 사회 현상 속에서 인지 하게될 미래가 그냥 부담 스러운거다. 아니 보기가 싫은거다...-_-

이런 즉흥적인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제대로된 판단과 감정을 표현 하려면 '자기'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더불어숲에 오래 있다보면 어떤 당위적인 사고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일정 부분은 기분좋은 부담 이기도 하나 어떤 부분들은 좀 근거없는 자기 검열(?)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더불어 숲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것은 아니나) 어디선가 농악 공연을 구경하고 난뒤에는 '마당'이라고 명명되는 그 공연장을 중심으로 구경꾼들 모두가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강강술레나 춤추기를 한다. 아니 해야한다.

공연 끝난뒤의 이 강강술레 나 정말 어색하고 싫다.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한 농악 공연 자체도 흥이 나지 않거니와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흥겨운척 하며 몸을 부딫치는 것도 좀 짜증난다. 그 강강술레 참가의 내면에는 농악 판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당위적인 부담감과 그에 응하는 사람들의 마찬가지의 당위적인 의무감이 함께 전개되는 것이다.

내가 농악을 듣는 이유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 연주의 느낌을 더 '이해'하고 '학습'하기 위해서다. 그냥 나정도의 사람이면 끝나고 바로 그자리 뜨게 해야 한다. 괜히 사람 미안하게 '저기 다들 가지 마시고요. 우리 다같이 일어나서 한바탕 흥겹게~' 머 이럴 필요는 없다는 거다.-_- (글의 논지와 완전히 부합 되지도 않는 '농악' 얘기는 왜 저렇게 길게 했을까? 나도 때로 부담 스럽기는 했나보다. 더불어 숲의 어떤 당위적인 분위기가...-_-)

돌려서 표현을 했다만, 내가 더불어 숲에 있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하면 이러한 불필요한(혹은 불필요 하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감정이나 판단의 '당위'가 아닌, '내가 처해있는, 그리고 위치하고 있는곳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배워나갔던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내가 어떤 조직에 속해 어떤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사람인지?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어떤 방법들을 써야 하는지? 나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 끼리 어떤 유대 관계를 가지며 사는것이 좋은지? 즉, '너 자신을 알라~'라는 질문에 한발짝 더 다가설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니가 이건희냐? 니가 강남사냐? 니가 서울 근교에 땅을 한 만평 가지고 있냐? 당신 부모님들 어떻게 살아 오셨지? 너의 소비가 수입에 비해 합리적이냐? 이런 질문들...

자기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면 모든게 확실해 진다.

그 위치 인지에 따라 정치적인 지지자도 판단이 가능해 지고,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반성 및 개선도 정도를 가늠할수 있게 되며, 무엇보다 내가 향후 행동하거나 쟁취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방향 설정도 가능해 진다. 즉, 미래 설계가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도덕적인 당위를 얘기 하는것이 절대 아니다. 나쁜놈도 제대로 되려면 자기 위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며칠간의 저 폭발적인 슬픔이 왠지 부담 스럽다.

그냥 넘치는 감정 속에서 떠난자에 대한 씻김굿과 같은 애도로만 정리 된다면 노무현의 죽음이 정말 너무나도 아깝기 때문이다.

정말 전략적인 판단으로, 그런 심성의 대통령이 그런 대중성을 확보해서 다시 대통령이라는 지위로 올라설수 있을지? 100은 아니더라도 여러 부분에 있어 내가 원하는 바를 정책적인 결정으로 실현 시킬수 있는 사람을 맞이 할수 있을지?와 같은 생각을 하면 말이다.

슬픔보다 아쉬움, 안타까움 보다 답답함이 밀려 든다.

정말로 저 슬픔의 에너지들이 분명한 '인식'과 더 강하게 결합되면 좋을텐데, 정말로...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인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무뢰전 가이]라는 작품이 있다. 부잣집 반친구 가족들에 의해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쓴 한 고아원 출신의 중학생이 '인간학교'라는 이름의 한 대기업이 운영하는 사설 교도소에 갇히고 난후 그곳에서 자행되는 여러 폭력적인 갱생 프로그램을 경험하다 내뱉는 대사가 있다.

'감동 했다고 해서 진실이라는 보증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에 대한 이명박의 청사진에 '감동'해서 '고소영'은 감지도 못하고 그를 쉽게 선택 하지는 않았는지? 노무현 집권 시기에 그를 비판하던 수많은 말들에 '감동'해서 그를 쉽게 폄하 하지는 않았었는지? 지금 그의 죽음 앞에 순간적인 슬픔에 '감동'해서 쉽게 눈물을 낭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명히 되짚어 보자. 지금의 감동을 조금더 이성적으로 인식할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지금 모두에게 더욱 필요한건 사실 이런 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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