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서서 .2.

by 김상연 posted Aug 0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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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내려와, 숭례문과 대한문을 거쳐
서울시 의회건물 앞을 지나다가 무심코 앞쪽을 바라보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보인다.

그 순간 내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2초쯤 흘렀을까?
나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그 밑에서 물장구치며 놀고 있을 아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건물을 지나다가 다시 앞쪽을 바라보니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메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뭐지? 무슨 일이 있나? "
1초후 다시 피식 웃어버렸다.
광장이 사람들로 가득찬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내 속에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벌어진 까닭은 뭘까 생각해본다.
음.... 충무공의 날카로운 눈빛과 경찰의 눈빛이 아직도 헷갈려서이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은 내 머리 속에서 아직까지는
<광장>이 아니라, 자동차로 가득찬 <네거리>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횡단보도를 건너 광화문 광장에 섰다.
8월 2일에 이어 두번째로 다시 왔다.
광장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다시 왔다.

눈앞에 그들이 보인다.
그런데 충무공 동상 주위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듯
조용히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땅 속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꼬마용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 속으로 돌진한다. 야~~~~

하지만 어른들은 지켜만 볼 뿐이다. 나도.
이유가 몰까?
음...  
창. 피. 해. 서.
마음은 굴뚝같지만 말이다.

어른들이 뛰놀 수 있는 분수를 따로 만든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칸막이를 치고 성인인증을 거친 후에만 들어갈 수 있는 분수라면
신나게 뛰놀 수 있을까???
그래도 역시 창피할 것 같다.
아니 더 창피해서 아무도 안들어 갈 것 같다.

아이들이 분위기를 띄어 놓은 이 분수 속으로
언제가는 뛰어들어가리라.  기필코. ^^

잠시후 나는 물에 손만 대볼 요량으로  
조용해진 물줄기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솟아 오른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옷과 가방이 좀 젖었다.

1초.  2초.  3초.
어! 이상하다. 기분이 좋다.
이 정도 가지고 기분이 좋아지다니.....
이제 저 녀석들이
"꺄악~~ 야~~ 우와~~"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어! 물분수 속에 여중생  세 명, 아기엄마 세 명, 아기 아빠 한 명이 보인다.
어, 할머니도 보인다. 손녀를 물줄기 속으로 떠밀고 있다. 저런... ^^;


나는 부러워하며 지켜만 볼 뿐이다.
잠시후 나는 물분수가 잠잠해진 틈을 타고
쏜살같이 충무공 동상으로 달려가 큰 북 앞에 섰다.
며칠 전 신나게 북을 치던 아이들이 생각나서 나도 한번 쳐봤다.
퉁 퉁 퉁. 신기하다. 철로 만들어진 모형북에서 제법 북같은 소리가 난다.

망루 바로 아래에서 슬쩍 충무공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 웃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
그의 큰 가슴에 가려 표정까지 보이진 않지만
큰 눈망울로 웃고 있는 모습이다.
너무 신기해서 뒤로 물러나 다시 바라보니
왠걸 매서운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망루에 바짝 다가가
몰래 살짝 올려보니 또 웃고 있다. 큰 눈으로.

이 얘길 누가 믿을까? 하지만 진짜다.
직접 와서 확인해보면 누구나 믿게 될 것이다.
다만 망루에 바짝 다가서지 않으면
충무공이 눈치채고 절대 웃지 않을 것이다.

물줄기를 피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물이 높이 솟아 올라 뒤로 피했다.
옆에 있는 여자아이 둘이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창피하다.

오늘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은
<광장의 힘>과 <아이들의 힘> 그리고 특히 <물의 힘>이다.
<광장과 아이들의 힘>은 며칠 전 처음으로 이곳에 선 순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물의 힘은 오늘에서야 확실히 알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물이 이런 <힘>을 갖고 있을까?

만약 광화문 광장의 분수가 지금처럼
아이들이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서 손과 발로
물줄기를 가지고 놀 수 있게끔 되어 있는게 아니라,
그냥 밖에서 바라보는 분수였다면 어땠을까?

너무나 아름다운 외관을 한 분수이지만,
신기한 물줄기를 계속해서 뿜어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단지 밖에서만 바라봐야하는 분수였다면 어땠을까?
그런 분수였다면 지금과 같은 놀라운 상황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과
그 안의 분수가 지금 만들어내고 모습들은 나로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이곳에서는 지금 씻김 굿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벌려놓은 신명나는 굿판에 어른들도 하나 둘 끼어들고 있다.
다음번엔 나도...... ^^
이런 굿판이 여기저기서 많이 많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이곳 광화문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과 함께 외치고 싶다.
큰 소리로 하늘을 향해 외치고 싶다.
"광장들이여, 어서 문을 열어라."
"순순히 열지 않겠다면 그때는
우리 꼬마용사들이 따끔한 맛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 용사들의 주요 공격술에 대해 알려주마.
첫째, 방귀 공격 "뿡~ 뿡~"
둘째, 다양한 환호성 공격 "야~~, 꺄~~~"
셋째, 떼쓰기 공격 "아이, 빨리 열어~~~~, 미워 미워~~~~
                          나, 이 문 열어줄때까지 안갈꺼야. 잉~~~~"

"그리고 우리 꼬마용사들의 뒤에는 불패신화의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이 계시다는 걸 덤으로 알려주마.
어떠냐? 이래도 문을 안열겠단 말이냐? 하, 하, 하"

문 활짝 열린 광장들 속으로,
땅 위로 뿜어져 올라오는 물줄기 속으로,
아이들과 함께 달려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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