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가 크면 복이 있다>를 보고......

by 김범회 posted Aug 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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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합작영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명예퇴직한 51년생의 철도 수리공이 주인공인 영화.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내에게 식사를 손수지어
보온병에 넣어 가져다 주는 남편.
아내의 옷을 빨래하는 남편.

"당신은 귀가 커서 복이 있는 관상을 가지셨군요."
어느 남자가 주인공에게 개를 팔 속셈으로 건넨 말입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나서 이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관상이 좋다 나쁘다, 이런 이야기는 모두 개소리니 믿지 말라"는게 감독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해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고,
부탁해 보기도 하지만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다단계 회사였고,
노래하는 악단에 취직하려고도 했지만
기관지가 안좋은 그는 고음불가였습니다. T.T

영화 내내 주인공은 담배를 지독히도 피워댑니다. 기관지도 안좋으면서.
(고단한 삶에 찌든 주인공의 모습이
계속 피워대는 담배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는 기관지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답답한 것은 자신의 나빠진 기관지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으려는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담배를 끊을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는 우리 현대 도시 문명인들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마음가짐입니다.
힘들기만한 생활 속에서도 그는
항상 웃음짓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합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가운 로보트 같아 보이는데
51년생인 퉁퉁한 주인공 아저씨 혼자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도 절망 속으로 빠져들 뻔 합니다.
한심스런 아들, 딸의 모습.
자신의 늙은 아버지에게 끼니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않는
남동생 내외의 모습, 그리고 계속되는 취업 실패 등으로
낙관주의자인 그조차 자신의 좋은 관상
즉, 귀가 커서 복이 있다는 자신의 관상은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을 때리고 도망치는 젊은이를
자전거를 타고 쫓아가다가 넘어져서
자전거 체인이 끊어져 버립니다. 보온병도 박살이 납니다.
허탈한 아저씨의 표정.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모습.
저는 아저씨가 자살하려 하지나 않을까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아저씨는
밧줄에 목을 메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거리에 방치된 조그만 자전거 수리통
(전 주인이 그만두고,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는 휴업중인 자전거 수리가게 수리통)에 묶여 있는 쇠사슬을 몽둥이로 끊고서
수리도구를 꺼내어 자신의 자전거를 고칩니다.

자전거를 거꾸로 세워놓고서 체인을 고친 후에
페달을 힘차게 돌리니,
체인이 막힘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체인이 갑자기 툭하고 끊어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잘 돌아가는 체인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

퉁퉁이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어두운 밤중, 가로등이 켜진 도시 위, 아스팔트 도로를
흥겹게 노래부르며 갑니다. 도로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자전거도, 자동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앞으로 사람들의 자전거를 수리하며
제 2의 인생을 신나게(?) 살아갈 뚱보 아저씨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재미도 있고, 내용도 훌륭한 영화임에도
관객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가 천만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세상은
올 수 없는 걸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접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역설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관을 나온 저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습니다.
펼쳐든 책은
(제목: 육조법보단경. 지은이:육조혜능선사 옮긴이: 학담 출판사: 큰수레)

조금 읽다보니 우연하게도(?) 복福에 대한 두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본 영화제목에 <복>이라는 글자가 들어있어서 더 그랬을 겁니다.

첫번째는 육조혜능스님의 말입니다.
"혜능이 화상께 여쭙니다.
제자의 마음이 늘 지혜를 내서
자신의 참모습(自性)을 떠나지 않으면 곧 <복밭>인데
무슨 일을 하라고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번째는 오조홍인스님의 말입니다.
"모두 오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겠다.
세상사람들에게는 나고 죽음의 일이 큰 것인데,
너희들은 날이 지나도록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음의 고통바다에서 벗어나기를 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참모습(自性)에 어리석으면
어떻게 <복>을 구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은 각기 가서 스스로 지혜를 보아
자기 본마음의 반야를 가지고 각기 한 게송을 지어
나에게 가져와 보게 하라."

위 두 구절에 따르면,
귀가 커야 복이 있는게 아니라,
자신의 참모습에 어리석지 않으면 복이 있는 셈이었습니다.

행복은 눈, 귀, 코, 입과 같은 겉모습에 달린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는데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구절들을 메모장에 옮겨 적고 있는데
귀여운 꼬마숙녀가 제 옆으로 와서 봉투를 하나 줍니다.
뜯어보니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오늘보신 영화가
당신에게 전해준 메세지를 적어서
봉투에 넣어 보내시오."

저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래와 같이 쓴 글을 봉투에 넣어서
다시 꼬마숙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남에게 선물받은 멋진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있고,
대신 힘센 다른 사람이 페달을 밟으며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는 동화같은 꿈에서 깨어나라.

땅에 쓰러진 자신의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끊어져버린 체인을 스스로 이어 붙여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
< (행)복 >임을 명심하라">

그런데 꼬마숙녀가 갑자기 봉투를 뜯어서 제가 쓴 글을 읽어보더니
"너무 길어요. 더 짧게 써서 주세요."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써서 줬습니다.
<"복 받을 생각일랑 말고, 스스로 복을 지어보세." >

꼬마숙녀는 읽어보더니 큰소리로 "다시"라고 말하며 찢어버립니다.

저는 울면서 다시 썼습니다.
<"끊어져서 잘 굴러가지 않는
가족과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를
자전거체인을 다시 이어 붙이듯이 튼튼히 다시 이어서,
신나게 굴려보세.">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쓴 글을
무서운 꼬마숙녀에게 주려고 고개를 돌려보니
꼬마숙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메모 한장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읽어보니,

"아저씨가 글로 쓴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바랄께요. 화이팅! *.* "

저도 마음 속으로 꼬마숙녀에게 음성메세지를 보냈습니다.

"나 사실 자전거 고칠 줄 모르는데...... ^^;
대신에 청소는 열심히 할 수 있어.
더러운 때, 찌든 때,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물건들
싹 다 깨끗이 쓸고 닦고 정리정돈할께. ^^"

p.s  글을 올리고 나서, 자려고 누웠습니다.
그런데, 영화제목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귀가 크면 복이 있다>

갑자기 생각나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정보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소리입니다. 누군가의 소리일 뿐입니다.
소리는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가야 하는 신호입니다. ">

- 책 <나무야 나무야>의 70페이지에 있는 글입니다.

주인공 퉁퉁이 아저씨는 자신보다는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챙겼습니다.

항상 웃으면서 남을 도와주려하는 바보같은 아저씨가 자꾸 보고 싶어집니다.

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영화제목에 있는 <귀>라는 단어는
우리 머리에 달린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의 소리가 들려오는 그 곳으로 달려가는
따뜻한 마음씨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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