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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2009.09.12 23:41

마지막 청소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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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왜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세상을 깨끗이 만들고 싶어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을 갖기위해서?

위의 생각들이 모두 제 마음이 맞습니다.
가족들의 칭찬, 지나가는 어르신들의 칭찬을 받으면
그냥 웃고 말거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지만
어려서부터 칭찬을 잘 못받고 자라서인지
칭찬을 받으면 쑥스럽기도 하고, 스스로 저의 영악함(?)과 부족함을 잘 알기에
저에게 주어지는 칭찬이 조금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언어에 담기면서 곧바로 자기를 떠나게 된다.
말을 하는 순간 그 의미가 수만갈래로 나눠진다."
수업시간에 신영복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말없는 실천이 바람을 거슬러 그 향기를 전하는 법이라는 걸 알고 있고,
가슴으로도 그렇게 느끼면서도 글로 저의 행위를 많은 분들께 전달하고픈
욕망을 떨쳐버리기가 어렵습니다.
이 욕망을 잘 살펴보면, 놀랍게도
저의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높이고 싶은 욕망임을 발견합니다.
물론 순수한 마음도 그 욕망 옆에 꼭 붙어있기는 합니다.
순수한 마음과 욕망의 경계가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입니다.
발을 조금만 잘못 내딛어도 그만 욕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린다는걸 압니다.

다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청소를 하는거지?"

밥값하려고.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살고 싶어서.
깨끗한 집에,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서.
그리고,  음....  
아! 오늘 놀이터와 잔디밭에서 비비탄을 주으면서 떠올랐던 생각이
저의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비탄을 다 줍겠다는 각오로 집을 나섰지만, 막상 수많은 비비탄 앞에서
작아지는 저 자신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비비탄만 줍지말고, 다른 것들도 줍자."
간단히 말씀드리면, "떨어져있는 비비탄을 다 줍지는 않겠다."
그 핑계로 다른 것들을 주워야 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지요. ^^;  

하지만, 눈에 보이는 비비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떨어져있는 비비탄을 다 줍지는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비비탄은 다 주웠습니다.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음.... 왜 청소하는가? 청소란 무엇인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차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때문에 청소합니다.
한마디로 '청소란,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있는 걸 알면서 외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도 어쩌면 교묘한 형태의 욕망(욕심)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외면하지 못하는 이 마음속에도 순수와 욕망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악한 저의 모습에 조금 우울해지네요. T.T

그렇다고 해서, 청소를 그만두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을겁니다.
다만, 저의 간사한 마음의 뿌리가 뽑히도록 더 무식하게,
더 깨끗하게 청소하고 싶습니다.
~~~~ ~~~~~~~

며칠전에 친척형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형한테 굉장한 꾸지람을 받았습니다.
"자기 호구는 자기가 책임져야지. 그렇게 못하겠다면, 차라리 굶어라."

청소와 빨래, 설걷이 등으로 최소한의 밥값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차에 듣게된 호된 꾸지람.

처음엔 마음 속으로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형한테 맞을까봐 말을 못했습니다. ^^;
형은 호구에 관한 말을 많이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됬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저 스스로와 타협을 해왔던 겁니다. "이만하면 된거잖아. 괜찮아."
청소라는 문맥에 빠져서 저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나봅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결심했습니다. 청소를 더 열심히 하기로. ^^;

그래서, 요 몇일동안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의 계속 청소를 했습니다. 쉬지않고.
물론 집안청소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청소를 통해 일어난 변화가 몇가지 있었습니다.

부친이 시비를 잘 걸지 않으십니다.
시비를 거셔도 이상하게 "욱"하질 않습니다.
엄마가 잔소리해도 "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도 줄었습니다.
부친께서 안방걸레질을 시작하셨습니다.
베란다 정리도 하셨습니다.
저랑 할머니랑 쓰는 방도 구조를 바꾸자고 제안하셔서
거의 한평정도의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

막내동생에게 반가운 청소예약이 들어왔습니다.
"오빠, 내일까지 신발장 위 물건들 정리해줘."
"예, 작은 아가씨." ^^

왠지 저와 가족 모두
좋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가족들에게 저 자신을 포장하려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말없이 그냥 계속 청소합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입을 열면 그르친다.>는 말의 의미를.
입을 많이 열지 않고, 그대신 마음을 활짝 열고
뭐든지 조금씩 조금씩 실천해나가자고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형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형이 알면 화낼지도 모르지만
형의 꾸지람이 더욱 청소에 매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이 말해줬던 이야기가 하나 생각납니다.
"너 스스로를 봐주지마라."

이상하게 예전부터 그 형의 말은
머리를 거쳐 가슴까지 내려오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발까지 옮겨보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저 자신을 봐주려하지 않으며 하루하루 살아보렵니다.
특히 청소에 있어서. ^^

~~~~~~~         ~~~~~~~~~~             ~~~~~~~~~~~~~

조금씩 야외청소도
몸에 익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낍니다.

반찬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 장소와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장소를 먼저 돌고나서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요령(?)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매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매일, 꾸준히 뭔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계속 청소공부로 주춧돌을 단단히 세워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봅니다.
물론 그 다음단계, 그 다음단계도 항상 청소와 함께! ^^
~~~~      ~~~~~~~

오늘은 야외청소를 늦게 시작해서 도중에 해가 뉘엇뉘엇 지더군요.
서둘러 잔디밭 청소를 해나가는데,
어두운 와중에도 신기하게도
반찬거리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유리는 어둠 속에서 더 반짝였고,
다른 반찬들도 그 부조화스러운 인공적 모습을
어둠속에 다 감추지는 못하더군요.

~~~~~    ~~~~~~~

이번 글을 끝으로 저의 청소일지를 마치려 합니다.
하지만 더욱더 즐겁게 청소를 조직하고, 참여해 나가려 합니다. ^^

끝으로 꼭 인사드리고 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닦여준 마루바닥님과 유리님,
변기님, 의자님, 세탁기님, 수도꼭지님,
그리고, 여기에 미쳐 다 적지 못하는
수많은 물건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특히, 먼지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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