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6

by 김성숙 posted Sep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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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은 글단풍을 만든다
학생들이 좋아한다.
그동안 외운 시를 글단풍에 적어 서로 본다.

사진을 이용하면 훨씬 즐겁게 만들수있고 표현도 적극적이라
사진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오래된 어딘가에서 꺼내온 듯한 사진들..
너무 작거나 커서 쓸 수 없는 크기들...

그리고 딱..하나 있는 사진을 가위로 척 오려버리기가..겁났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생각을 하고 또하고..
그러면서 내가 가진 사진기로 아이들을 찍어서
컴에다 저장하고  그것을 다시 칼라인쇄하면 되겠다 싶어

과연 내 프린터가 칼라가 되는지..확인하고(잉크만 다시 넣으면 가능)
아이들에게 사진기를 들이대면서
선생님이 사진 찍어서 다음주에 가지고 올께...

으쓱하며..계획을 말해줬다.
대부분 아이들은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명희와 서희가 절대로 절대로 사진은 안찍는단다.

아니.이런 일이..

멍하니 그애들을 바라보는데..
나는 내 초등 시절.
가족들이 전주 덕진 왕릉으로 놀러갔는데
가족사진을 찍는다고 다 모였는데..
갑자기 내가 뛰어서 도망가버린 사건이 생각났다
나도...이상하게 사진 찍기가 싫었다
엄마는 목이 터져라 나를 부르고
나는 흰타이지가 너무나 쪼여서 더워 죽겠는데
땀나게 뛰었다.

결국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슬그머니 돌아왔는데
그 뒤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엄마가 나를 때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 저 나이가...사진이 싫을 때도 있겠지.
나는 억지로 찍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애들 모르게 한 두장을 찍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사진을 안쇄하니(인화지에 인쇄해서 사진같은 느낌이 온다)
명희와 서희 표정이 영...아니다.
그래도 그것을 가지고 갔다.

다른 친구들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가지고
글단풍을 만드는데.
명희와 서희에게는 너희들이 조금만 도와줫으면 표정이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표정을 담아 사진을 건내줬다.
다음에는 도와줘라....응.

명희와 서희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그거야 지금처럼만 웃으면 되..
이러면서 나는 그들이 사진을 즐기길 바랬다.


명희는 수업이 끝나면 쓰레기도 치우고
재료도 다시 거두고 하는 일을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돕는다
처음엔  그 애의 무표정에 내가 압도 되어 ..어려웠는데
조금씩..우린 서로를 인정하고 있다.

연주는 이제 나를 도와준다.
인쇄된 사진을 연주에게 주고 나눠주는 일을 시키면
연주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서희는 불퉁거리고 불성실하게 참여하던 수업태도가
오래도록 변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늦게온 이유도 스스로 설명하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고 되묻기도 한다.

교사로 아이들과 동등하게 서로를 인정해 가는 일이
금방 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수업이 저 애들의 인생에 위로가 되길 바란다.
살다가 돌아보면...웃음이 번지는 그런 아름다운 시절처럼..
그렇게 저애들 가슴에 깃들기를 소망한다.

내가 할일은 그 추억속에 나오는 좋은 선생님이면 된다.
억압하지 않고 차근차근 ......서로를 인정해가면서
충고도 하는..그런 사이.
그런 사이를 만들어 가는 선생님이면 ..된다.

'연주야...욕 하지마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연주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해요.'...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  거짓말이 연주가 가고 싶은 방향임을 알기에
믿는다. 한번 두번 그렇게 '안해요'라고 말하다보면
정말로 욕을 안하게 되는 그런 기적이 올 것이다.

우린 풀꽃이란 시를 아주 좋아한다.
이유는...짧아서..라고 소리지르지만 나는 안다.
그 시가 좋아서인 것을.

풀꽃(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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