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일지4

by 김범회 posted Sep 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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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조금 귀찮아져 갑니다.
야외청소를 두번빼먹고, 실내청소를 부분부분 빼먹고 소홀히 했습니다.
역시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은 옳았습니다.
청소때문에 조금 사람노릇 좀 할 수 있게 되니까
벌써 청소의 은혜를 망각하고 청소가 가져다준 복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콩 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말처럼
그 복은 거의 다 까먹고,
벌써 게으름, 산만함, 이런저런 욕심등이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최소한의 수비(청소)로 저 자신을 일단
어느정도 선에서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제 말이 농담처럼 들리실지도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이로써 청소가 저의 생활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라는 게 명확해졌습니다.

얼마전 글에서, 청소는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감히 그런 정의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정의는 청소를 하루하루 빠짐없이 해나갈 때 내릴 수 있는 정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 좋은 정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왠지 무거운 의무감, 책임의식 같은 느낌이 베어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청소에 그 이상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청소공부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번주 목요일에 만나뵈었던 한분이 떠오릅니다.
그분은 정말 청소를 즐기시는 분이셨습니다.

여러분께 그분을 소개합니다.

자, 그럼 저번주 목요일로 떠나보겠습니다.
슉~~~~

놀이터를 지나, 화단을 거쳐서, 새롭게 넓힌 청소구역으로 향해 걸어갑니다.
그곳은 우리집 앞 놀이터보다 조금 더 큰 놀이터.
장이 서서 그런지 아파트 단지에는 활기가 넘칩니다. 출렁 출렁~~~

꼬마아이들이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저 아저씨 모하는 거야?"
"다른 친구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거야. 우리 ~~는 쓰레기 안버리지?"
몇몇 꼬마들이 쓰레기를 가져다 줍니다.
이제 아까 말씀드린 저의 스승이 나타나십니다.
어디선가 바람처럼 홀연히 저의 등 뒤로 다가오셔서 아무말 없이
손을 뻗어 제 왼손에 들린 검정비닐봉다리 속으로 쓰레기를 넣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계속 저와 함께 쓰레기를 주으셨습니다.
그 때서야 뭔가 다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5분정도 지나서 저는
"고마워."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그 분은 머리를 땅에 바짝 숙인채 잘 보이지 않는 쓰레기까지 주으셨습니다.
저와 그분은 미끄럼틀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자원봉사하는 아저씨나 마찬가지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
여쭤보진 않았지만 얼굴은 11살정도로 보이셨습니다.
다시 반찬수거를 시작했습니다.
저희 앞에 뭔가 하나가 떨어져 있었는데 저는 그 분께
양보하려고 일부러 줍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여지없이 그것을 주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놓치시는게 많네요."
잠시 후 장을 보시는 엄마에게 청소도와드려도 되는지 허락을 받는다며
잠시 자리를 비우시더니 금새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잠시 그 분의 표정을 설명해 드려야겠습니다.
너무나 신나고, 재미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분은 다시 말없이 자리를 비우시더니 잠시후
"제가 친구 두명 데려왔어요."
한친구는 초등학생 4학년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고,
한친구는 5살정도 될까말까하는 남자아이였습니다.

이제 네 명이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웬만하면 손 더러워지니까 안도와줘도 된다고 하고 싶은데
그런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워낙 즐거워하는 표정들이라서. ^^;
꼬마친구는 활짝 웃으며 계속해서 낙엽과 벽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도 활짝 웃으며 고맙게 받았습니다.

그분은 갑자기 가봐야 한다며 번개같이 사라집니다.
저는 친구분들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분이 가버리시자, 갑자기 활기가 사라지며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기 때문입니다.
"고마워. 얘들아, 이제 됐어. 잘가."
"안녕히 계세요."
손씻기 전에 입,코 안만질 것을 약속하고 저희는 헤어졌습니다.
이제 혼자 마무리하고 들어가려는데 어디선가 혜성처럼 다시 그분이 돌아오셨습니다.
"엄마가 친구분하고 얘기하고 계셔서 다시왔어요."^^
저는 그분을 도와 함께 청소를 했습니다. 또 다시 지적을 받았습니다.
"나무 밑도 잘 보셔야죠."

그분은 아까처럼 간다고 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시고,
그러기를 세너번 정도 더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분은 저에게 청소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시범을 보여주시러 오신 분 같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 <성찰은 최고의 인식입니다.>를 읽어보셨을리 만무하건만
그분은 그 글 속의 내용들을 현실에서 실행하고 계셨습니다.
정말 능동적으로 청소에 참여하셨고, 여럿이 함께 소통하셨으며,
주체적으로 청소를 조직하시되 부단히 변화하셨습니다.

내일부터는 스승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헤이해진 저의 마음을 다잡고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청소를 해나가려 합니다.

며칠전 저녁에 자전거를 타며 지나가시는 스승님을 뵌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인사를 못드렸습니다.
다음에 뵈면 밝은 미소지으며 반갑게 서로 인사나누고 싶습니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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