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보다 가지를 아버님께
벌써 중추(中秋). 저희 공장 앞에는 밤새 낙엽이 적잖게 쌓입니다. 낙엽을 쓸면 흔히 그 조락(凋落)의 애상에 젖는다고 합니다만, 저는 낙엽이 지고 난 가지마다에 드높은 가지들이 뻗었음을 잊지 않습니다. 아우성처럼 뻗어나간 그 수많은 가지들의 합창 속에서 저는 낙엽이 결코 애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겠습니다.
잎새보다는 가지를, 조락보다는 성장을 보는 눈, 그러한 눈의 명징(明澄)이 귀한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가을에 읽을 책은 형님께 몇 권 부탁하였습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고 독서가 사색의 반려라면 가을과 독서와 사색은 하나로 통일되어 한 묶음의 볏단 같은 수확을 안겨줄 듯도 합니다.
오늘은 이만 각필하겠습니다.
1971.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