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지대에도 봄이 아버님께
이번 겨울은 매우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우수, 경칩, 춘분……. 어느새 춘색이 완연한 봄입니다. 봄은 그 긴 인고의 동면에서 깨어나 울창한 여름의 성장을 거쳐 가을의 결실로 향하는 '출범'의 계절입니다.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께서는 징역살이의 추위를 걱정하시지 않아도 되는 계절입니다.
그동안 아버님께서 보내주신 {중용}을 여러 번 읽어보았습니다. 물론 제가 그 깊이를 깨닫지 못하는 대목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역시 그 중후한 고전적 가치에 새삼 경탄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동양고전과 한국의 근대사상에 관한 독서를 하고 싶습니다. {맹자}, {춘추} 그리고 율곡의 [공론], 허균의 [호민론], [실학] 등 시간이 나는 대로 정독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 동양철학과 한국의 근대사상에 관한 개설서를 먼저 읽고 독서계획을 세워서 체계 있게 섭렵하였으면 합니다. 앞으로 제가 필요한 책은 아버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우선 개설서로 사용할 만한 것을 문의해주셨으면 합니다.
엊그제 장수가 다녀갔습니다. 장수 편에 소식 들으셨을 줄 알고 있습니다만 아버님께서 우송해주신 인감과 인감증명으로 미불봉급을 수령하였습니다. 지난번 정자한테 보낸 편지에 자세히 적었습니다만 편지가 반송되어 왔습니다. 그간 궁금하셨을 줄 압니다. 그리고 이번에 수령한 돈으로 입치(入齒)하였습니다.
이곳 벽돌담 속의 이방지대(異邦地帶)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유록빛의 산능선, 움이 돋은 수양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훈풍(薰風)과 양광(陽光)입니다.
적당히 독서하고 적당히 운동하고 늘 건강합니다.
1973.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