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녹아 못에 고이고 부모님께
꽃을 시새움하는 풍설에도 아랑곳없이 봄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봄 풍물(風物)의 특징을 화(花)에 구하지 않고 수(水)에서 찾은 도연명의 그 탁절한 시정이 이해될 듯합니다. 눈 녹은 자리에 물 고이고, 물 위에 내리는 조춘(早春)의 양광(陽光)은 동면(冬眠)한 마음마다 그냥 꽃이라 하겠습니다.
내내 몸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자주 꾸중하셨듯이 전에는 몸 간수에 무던히도 게을렀습니다만 징역 사는 동안 몸 단속만은 놀랄만치 부지런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겨울은 감기 앓지 않고 넘겼습니다. 오히려 어머님, 아버님의 건강이 가끔 걱정되기도 하고 적적하시겠다 마음 쓰이기도 합니다.
한문 해독은 역시 아버님의 말씀같이 문장을 다독(多讀)하여 문리(文理)를 터득하는 방법이 정도이자 첩경임을 알겠습니다. 요즈음은 천자문 주해를 읽고 있습니다. 전거(典據)를 일일이 밝힌 자상한 해설이 매우 도움됩니다. 동양사와 한문책은 보내시지 않기 바랍니다. 비염증에 쓸 연고와 운동화(흑색 10문 7)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각필하겠습니다.
1974.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