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뛰어든 겨울 아버님께
가는 척 하던 겨울이 과연 역습해왔습니다.
겨울의 심사를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기다리던 사람을 맞이하듯 조금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철모르는 와공(蛙公)이, 성급히 고름을 풀던 꽃잎이, 이 눈발에 얼지나 않는지. 해마다 봄은 피다가 얼은 꽃을 들고 동령(冬嶺) 넘어 아픈 걸음으로, 늦어서 수줍은 걸음으로, 그렇지만 배달부보다 먼저 오는 것입니다.
이달 초순께든가 영석이 전주로부터 다녀갔습니다.
아버님의 편지 잘 받았습니다. 어머님께서 다소 적적하시겠습니다만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봄철, 가을철은 징역 살기로도 좋은 계절입니다만 이곳에서는 봄 가을이 바깥보다 유난히 짧아서 '춥다'에서 바로 '덥다'로, '덥다'에서 바로 '춥다'로 직행해 버립니다. 징역 속에는 '춥다'와 '덥다'의 두 계절만 존재합니다. 직절(直截)한 사고, OX식 문제처럼 모든 중간은 함몰하고 없습니다.
1976.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