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언제나 봄날 아버님께
늘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그나마 변함없이 변하는 것은 계절뿐이라지만 그것도 실상은 춘하추동의 '반복'이거나 기껏 '변함없는 변화'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이르면 우리는 다시 닫힌 듯한 마음이 됩니다.
이렇듯 닫힌 마음에 큼직한 문 하나 열어주듯, 지난 24일 하루는 '사회'(저희들은 담 바깥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회 사람, 사회 김치, 사회제(製)…… 등)에 다녀왔습니다. 회덕에 있는 산업기지개발공사를 들러 청주댐 공사장을 견학한 우량수 사회참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놀랐던 것은 엉뚱하게 '바깥'은 봄철이 아니라 뜨거운 여름이었다는 착각의 발견이었습니다. 계절의 한서(寒暑)에 아랑곳없이 우리의 머리 속에 그리는 바깥은 언제나 '따스한 봄날'이었던 것입니다. 수인들의 해바라기같이 키 큰 동경 속에서 '바깥 사회'는 계절을 어겨가면서까지 한껏 미화되었던 셈입니다.
더위에 후줄근한 길가의 쇠비름이며, 공사장의 남포소리와 풀썩이는 먼지, 시골 아낙네들의 걷어붙인 옷자락……, 바깥은 한더위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다만 직진의 고속도로 위 그 선명한 백선(白線)과 상점에 진열된 마치 기념사진 속의 아이들같이 단정한 과실들의 대오(隊伍)만이 유독 여름을 거부하는 어떤 '질서'의 표정 같았습니다.
돌아와 소문(所門)을 들어올 때, 우리는 잠시 거기 접견실 부근을 서성이는 가족들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1977.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