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듯 아버님께
7월 9일부 하서와 우송해주신 안경 잘 받았습니다. 도수와 크기도 꼭 맞습니다.
약한 돋보기 안경은 40대에 쓰는 것이라 하여 흔히 40경(鏡)이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저에게 40경을 보내주시는 아버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안경알을 닦을 때 거기 어른거리는 얼굴을 만나게 됩니다. 40을 불혹(不惑)이라 합니까.
오늘은『주역』(周易)을 보다가 슬며시 치기가 동하여 국어사전의 페이지를 시초(蓍草)삼아 '이위화'(離爲火)의 점괘를 얻었습니다. 상전(象傳)에 시이축빈우길야(是以畜牝牛吉也)라 하여 암소처럼 유화(柔和)해야 길(吉)하다고 했습니다. {주역}의 괘사효사(卦辭爻辭)가 어느 것 하나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아닌 것이 있겠습니까만 동양사상을 서양의 그것과 구별케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유(柔)를 강(剛)보다 선호하는 태도, 이를테면 우공이산(愚公移山)과 같이 우매할 정도의 굉원(宏遠)한 기량(器量)이 그런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이 있는 거실(居室) 바로 창 바깥에 백여 분(盆)의 국화장(菊花場)이 있습니다.
개화불병백화총 독립소리의무궁
開花不倂百花叢 獨立疏籬意無窮
영위지두포향사 하증취타북풍중
寧爲枝頭抱香死 何曾吹墮北風中
봄 여름 내내 눈감고 있다가 더디 상강(霜降)에야 꽃을 피우는 국화는 고인(古人)의 말처럼 은자(隱者)임에 틀림없습니다. 땡볕에서 밀짚모자 하나로 꽃 가꾸기에 정성인 원예부의 일손을 보고 있노라면 수유리로 이사오던 누님이 생각납니다. 세가(貰家)에 들면서도 먼저 화초부터 심고 가꾸던 누님의 마음씨, 그 화분 같은 마음 속에서 꽃처럼 자라던 꼬마들이 생각납니다.
1977.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