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도시에만 있습니다 아버님께
추기칩복(秋氣蟄伏)의 혹서(酷暑)입니다.
시골의 천변(川邊)이나 산곡(山谷)의 수간(樹間)에는 없는 더위입니다.
더위는 여름의 산물이 아니라 도시와 밀집에 고유한 인위의 산물이라 생각됩니다.
치반(齒盤) 수술은 금주 중으로 있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이것은 어느 현처(賢妻)가 긴 편지의 말미에 덧붙인 유명한 양해(諒解)의 일절입니다만, 저의 짧은 편지는 정성과 정돈과 정수(精髓)의 짧음이 못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가늘은 필촉으로 쓴 글 대신에 손가락이나 몽둥이로 쓴 듯한 굵고 간략한 글이 부럽기도 합니다.
어머님과 가내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1978.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