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의 공허 속에서 형수님께
9월 중순, 캘린더에는 단풍의 계절이 흐드러져 있습니다. 이월화(二月花)보다 더 붉은 홍엽(紅葉)들이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타는 듯합니다.
실생활의 중량이 배제된 '창고의 공허' 속으로 계절은 다만 한난(寒暖)으로 환원되어 찾아왔다 돌아갑니다.
망치가 가벼워 못이 튈까 조심하고, 여름이 시원하여 겨울이 추울까 염려하다가도 계란을 보고 새벽을 묻는 조급함에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합니다. 어쨌든 달력의 가을 풍경을 보고 이내 겨울옷을 꺼내는 것을 지혜라 일컫기에는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1980. 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