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탯줄의 끈 아버님께
10일부 하서와 모포 잘 받았습니다.
가서(家書)를 받을 때, 소포 꾸러미를 받고 무인(拇印)을 찍을 때, 접견 호명을 받을 때 그리고 오늘처럼 봉함엽서를 앞에 놓고 생각에 잠길 때……, 저는 다시 한번 영원한 탯줄의 끝에 달린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거미줄같이 수많은 관계 속에 서지 않을 수 없고 보면 '관계는 존재'라는 명제의 적실(適實)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혼자'라는 느낌은 관념적으로만 가능한 정신의 일시적 함정에 불과하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0월 중순, 객지를 사는 사람들이 중추의 깊은 하늘에 고향을 떠올리는 시절입니다.
낙양성리견추풍 욕작가서의만중
洛陽城裏見秋風 欲作家書意萬重
복도에 꾸부리고 앉아서 편지 쓰는 사람들의 수의(囚衣)에 싸인 굽은 등이 스산합니다.
어머님께서도 초겨울 감기 조심하시고 내내 강건하시길 빕니다.
1980.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