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세상읽기] | |
“따뜻한 가슴과 연대만이 희망이다” |
7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한 서울대 출신자
모임 관악민주포럼(회장·박석운)은 지난 4월19일
창립 1주년 기념강연회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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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러분이 말하는 식으로 대학입학
연도를 따지면 59학번입니다. 대학교 2학년 때 4·19, 3학년
때 5·16을 겪었지요. 신동엽 시인은 4·19에서부터 그
이듬해 5·16까지의 시절을 ‘잠시 푸른 하늘을
보았던 시절’로 묘사하였지요. 정말 그 시구처럼
저도 그 시절에 잠시 보았던 푸른 하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그 이후에 제가 겪었던 긴 세월
동안에 정말 푸른 하늘처럼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해준 하늘이기도 합니다. 그 시와 관련해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습니다. 4·19혁명이란 사실은
총알이 모자를 뚫고 지나간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총알이 이마를
뚫고 지나간 ‘혁명’으로 착각하였다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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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혁 문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체적 역량의 문제이고 둘째는
객관적 조건의 문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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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제는 성급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주의와 졸속주의입니다. 저는
당시에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에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민주화 과정에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중앙으로 집결하느라 바빴더군요. 민중과의
접촉면을 유지하고 강화하거나 새로이 조직하는
노력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둘러
중앙으로 결집했다가 또다시 서둘러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죠. 여러분이 더 잘 아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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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체역량의 관점에서 논의하자고
했습니다만 문제는 이 역량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다시 말해서 세대간에도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더 절망적입니다. 역량의 후속부대를
이뤄야 할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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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저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다른 체제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 상품구조가
갖는 엄청난 규정력, 이게 얼마나 우리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느냐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는 어떠한
전망도, 어떠한 운동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한 반성과 더불어 우리의 사상을 튼튼하게 꾸려
나가려는 노력 없이는 과거의 답습은 물론 또 한 번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판단입니다.
민주화에 대한 것이든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한
것이든 어쨌건 철저한 반성이 없는 한 운동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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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가. 결론은
분명합니다. 그 여성과 저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기
때문이에요.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거지요.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사회를
구성하기에는 그 지속성이 너무 짧아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상품교환이라는 형태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체제적 한계를 갖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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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주체적 역량을 질적인 측면에서
보자는 이야기를 했는데, 연대야말로 그 핵심
고리입니다. 연합에서 연맹으로, 다시 전선으로,
파티(party)로 나아가는 연대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역량을 한번 보세요. 연합형식의 연대도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연대라는,
관계론적 정서가 전혀 없기 때문이에요.
근대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강철의 논리, 그런
존재론적 논리에 다 매몰되고 있는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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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는
노동자들만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통과정의 부등가교환으로
착취당하고 빼앗기는지, 교통지옥과 불친절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량식품을 사먹고 있는지…. 이는
우리가 날마다 겪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부등가교환과 부당한 교환과정에 만들어지는 것이,
즉 실현되고 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입니다. 공장만이 유일한 착취의 현장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같이
빼앗기고 있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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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붓글씨를 좀 씁니다. 붓글씨는
서양에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동서양 간
패러다임 차이를 느끼게 돼요. 예를 들어 붓으로 첫
획(劃)을 잘못 그었다고 합시다. 각도가
삐뚤어졌거나 생각보다 획이 굵게 그어졌다면,
그때부터 비상체제에 돌입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지우고 다시 쓸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하는가 하면,
그 다음 획으로 첫 획의 잘못을 커버하는 거예요.
그래도 안 되면 그 다음 글자로 결함을 커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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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에서 빗나간 이야기였습니다만
연대문제란 사실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연대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신뢰성의 문제,
신뢰집단의 문제입니다. 한 사회의 연대성의 층위는
결국 신뢰집단을 건설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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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 없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대개의 인텔리 출신들은, 특히 서울대
출신들은 모든 문제를 논리적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논쟁도 무조건 논리 정합적인
방식으로 전개하려고 하지요. 자연히 논의는
논쟁적이 되기 쉽고 소모적인 사투(思鬪)로 이어지는
경향을 띠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논쟁 그
자체가 실천이 되고 마는, 다시 말해서 실천적
성과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오리알에다 제 똥
묻혀서 굴러가듯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껴안고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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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민주포럼 강연회 - 신동아 2001년 7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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