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싹 형수님께
오늘은 춘삼월 양광(陽光)을 가득히 받으며 금산의 칠백의총을 참관하고 왔습니다.
15척 담은 봄도 넘기 어려운지 봄은 밖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나절의 봄나들이를 맞아 저마다 잠자던 감성의 눈을 크게 뜨고 봄을 들이마시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나는 들판을 기웃거리다가 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을 놀라움으로 깨달았다. 사람에게 봄기운을 먼저 가져오는 것은 거루고 가꾸어준 꽃나무보다 밟고 베어냈던 잡초라는 것을. 들풀은 모진 바람 속에서도 잔설(殘雪)을 이고 자랄 뿐 아니라 그렇게 자라는 풀잎마다 아쉬운 사람들이 나물로 먹어온 것도……. '지금은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의 이 일절은 스스로 잡초섶에 몸을 둔 우리들로 하여금, 봄이 늦다고 투정하는 대신에 응달에 버티고 선 겨울의 엉어리들 틈 사이에서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를 봄싹을 깨닫게 하는 높은 채찍입니다.
어머님, 아버님 다녀가신 편에 소식 잘 듣고 있습니다. 형님, 우용이, 주용이 건강을 빕니다.
1981.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