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벽오동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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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벽오동 가지
아버님께


가뭄과 더위가 일찍부터 성화 같은 여름입니다. 그간 어머님, 아버님을 비롯하여 가내 두루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9일자 하서, 형수님이 보내주신 책, 그리고 [동아스포츠] 등 모두 잘 받았습니다. 지난번에 보내주신 액자필(額子筆)은 매우 좋은 것입니다. 역시 큰 붓으로 쓴 글씨는, 작은 붓으로 쓴 같은 크기의 글씨에 비하여, 여유와 깊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방과 도배 등으로 며칠간 어수선하고 바쁜 날을 보냈습니다. 새로 옮긴 방은 바깥에 세 살 먹은 벽오동 한 그루가 창지(窓枝)를 뻗어주고 있습니다. '오동엽대우성호'(梧桐葉大雨聲豪), 아직은 어린 잎이라 빗소리를 큼직하게 전해주지는 못합니다만 여름날 아침 투명한 녹엽(綠葉)이 던져주는 싱싱함이란, 저희들로 하여금 가히 용슬(容膝)의 이안(易安)을 깨닫게 해줍니다.

 

 

198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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