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냄새, 흙냄새 형수님께
언제 가물었더냐 싶게 요즈음은 이틀거리로 비가 쏟아집니다. 등 뒤에 이렇게 많은 비를 감추고도 비 한 줄금 그렇게 어렵던 여름철의 즉흥(卽興)이 무척 우둔해 보입니다.
지금 내리는 비가 농사에 이로운 건지 어떤지 몰라 서로 물어쌓다가 문득 세사(世事)로부터 멀리 나앉은 자신들을 확인합니다.
오늘은 손님이 오신다고 아침 일찍 화단을 가꾸었습니다. 싸아한 풀냄새 흙냄새에 묻혀본, 실로 오랜만의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맨드라미, 채송화, 창포, 팬지, 하국 등 그리 잘나지도 못한 꽃들이지만, 뚱딴지, 쇠비름, 클로버, 가라지 들과 사이좋게 어울려 이루어내는 자연스러움은, 빼어난 꽃들이 주는 경탄과는 달리, 규칙과 인공의 질서로 인해 각이 진 마음들을 포근히 적셔줍니다.
형님 하시는 일과 우용, 주용의 건강과 형수님의 발전을 빕니다.
1981.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