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 아버님께
장마 걷힌 하늘에 여름 해가 불볕을 토합니다.
한강을 지척에 두고 계신다지만 물고기들도 살 수 없어 떠나버린 강물이 생기 있는 강바람 한 줄기 피워내지 못하는 것이고 보면, 잠실의 여름은 결국 모래와 자갈로 남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겨울 동안은 서로의 체온이 옆사람을 도와 혹한을 견디던 저희들이 이제 여름에는 자기의 체온으로 옆사람을 불 때는 형국이 되어 물것들의 등살에 더하여 당찮은 미움까지 만들어내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저께 밤중의 일이었습니다. 여태 없던 서늘한 바람기에 눈을 떴더니, 더위에 지친 동료를 위하여 방 가운데서 부채질하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상(嚴霜)은 정목(貞木)을 가려내고 설중(雪中)에 매화 있듯이 고난도 그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을 묻고 있는가 봅니다. 이러한 인정을 보지 못하고 지레 '미움'을 걱정함은 인간의 선성(善性)의 깊음에 대한 스스로의 단견(短見)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한 달간은 혹서기를 피하여 순화교육도 방학입니다. 구호와 군가소리로 무덥던 운동장에 대신 공 치고 뛰노는 웃음소리로 생기 가득합니다.
그간 형님, 영석이 다녀간 편에 대강 소식 듣고 있었습니다만 어머님 문안이 매우 적조하였습니다. 내내 강녕하시길 빕니다.
1981.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