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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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과 문
형수님께


지난 달 하순에 저희 서화반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5, 6년 동안 작업장으로 사용해왔던 강당 옆 계단으로부터 열세 평짜리 큰 방으로 옮겨왔습니다. 사글세를 살다가 전세를 얻어 든 폭은 됩니다.
방이 크기 때문에 윗목에 책상을 벌여놓아 작업을 하고 아랫목에서 먹고 자는 이른바 숙, 식, 작업의 전 생활이 한곳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서화반의 식구도 일곱으로 늘고, 저녁잠만 자러 오는 악대부원 10여 명이 또 이 방의 동숙인입니다.
이것은 실로 이사 이상의 큰 변화입니다. 낯선 것, 서툰 것, 심지어 불편한 것까지 전체로서 신선한 분위기를 이루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번 이사 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문'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陽地)'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進步)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형수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의 발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1981년 세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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