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은 교실 형수님께
여러 형제들 틈에서 부대끼며 자라면 일찍이 사회관계를 깨닫게 되고 조부모 슬하에서 옛것을 보고 들으면서 자라면 은연중에 역사의식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삼형제 이름 다 부른 다음에야 간신히 제 이름을 찾아 부르시던 할머님이나, 유지(油紙)를 펴고 그 앞에 꿇어앉아 붓글씨를 익히던 사랑채의 할아버지, 그리고 형과 다투면 형한테 대든다고 나무라시고 동생과 다투면 동생 하나 거두지 못한다고 또 야단치시던 어머님의 꾸지람도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의식의 맹아(萌芽)를 키워준 귀중한 자양(滋養)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읽고 배운 활자형태의 지식도 우리의 의식에 상당한 성장의 폭을 부여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린 시절이나 책갈피 속에서 얻은 왜소하고 공소(空疏)한 그릇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물을 채워주는 것은 역시 생활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각종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징역살이는 그것의 가장 적나라한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순 노인에서 스물두어 살 젊은이에 이르는 스무남은 명의 식구(?)가 한 방에서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바짝 몸 비비며 살아가는 징역살이는 사회 역사 의식을 배우는 훌륭한 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도덕적 분식(粉飾)이나 의례적인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벌거숭이의 이(利) 해(害) 호(好) 오(惡)가 알몸 그대로 표출됩니다. 알몸은 가장 정직한 모습이며, 정직한 모습은 공부하기에 가장 쉽습니다.
다시 보내주신 돈, 그리고 따뜻한 스웨터 다 잘 받았습니다.
10월 하순, 가을도 이미 깊어 여기저기서 잎을 떨구는 나무는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 같습니다. 잎이 떨어지고 난 가지에 나타난 빛나는 열매가 여름 동안의 역사(役事)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버님의 하서와 책 받았습니다. 불원(不遠) 대전에 오시면 출간에 관한 말씀 듣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1982.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