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 서고 싶은 충동 계수님께
소매 걷어붙이고 밀린 일을 쳐내듯, 여름 대낮 그 숨막히는 정적을 박살내며 강철 같은 소낙비가 창살 나란히 내려꽂히면, 나는 어느덧 빗줄기에 우쭐우쭐 춤추는 젖은 나뭇잎이 되어 어디 산맥을 타고 달려오는 우레소리를 기다리며, 그 세찬 하강(下降)을 거슬러 용천(龍天)하듯 솟아오르는 목터진 정신에 귀기울입니다.
이번 여름은 소나기가 잦아 그때마다 빗속에 서고 싶은 충동을 다스리지 못해 마음이 빗나가기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소나기가 씻어가는 것이 비단 더위만이 아니라 지붕의, 골목의, 그리고 우리들 의식 속의 훨씬 더 많은 잔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람한 자연의 역사(役事)는 비록 빗속에 서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를 청신한 창조의 새벽으로 데려다주는 것임을 알겠습니다.
장승처럼 선 자리에 발목 박고 세월보다 먼저 빛바래어가는 우리들에겐 수시로 우리의 얼굴을 두들겨줄 여름 소나기의 질타가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릎 칠 공감을 구하여 깊은 밤 살아 있는 책장을 넘기기도 하고, 같은 아픔을 가지기 위하여 좁은 우산을 버리고 함께 비를 맞기도 하며, 어줍잖은 타산(他山)의 돌 한 개라도 소중히 간수하면서……, 우리의 내부에서 우리를 질타해줄 한 그릇의 소나기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중복 근처의 한더위 속에서 미리 가을철 청량한 바람을 생각해보는 것도 그리 허무한 피서법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더위도 고비가 있고 가을도 다 때가 있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입추 건너 머지않아 처서입니다.
1983.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