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일 | 1994-0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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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 돌베개 |
- 머리말 -
사상(思想)은 선택(選擇)이다. 사상은 일반적으로 이론이나 언술의 형태로 체계화되어 제시되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대체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선택의 형태로 현상화되어 나타난다. 사상은 바로 선택의 준거에 관여한다. 작게는 사소한 일상사의 선택에서부터, 크게는 목표의 설정과 방법의 확정 등 실천의 전과정에 이르기까지 사상은 어김없이 자신을 실현한다. 관습이나 상식에 따른 선택이라 할지라도 또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상관없이 사상은 우리들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자신을 관철한다.
이 『중국역대시가선집』의 편역과정에서 가장 먼저 직면한 문제가 바로 이 선택의 문제였다. 3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관류해온 수많은 중국시가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이고 그만큼 어려운 과제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중국 시가는 그것을 선별하는 관점에서 심한 편향성을 띠고 있었음이 사실이다. 이러한 편향성은 중국시가의 참 모습을 온당하게 이해할 수도 없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중적 진실과 그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마저 비하(卑下)하고 나아가서는 사회의 모순을 은폐하고 당대의 실천적 과제를 무산시키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된다.
이『선집』의 편역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소개된 중국시가의 이러한 편향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착수되었다. 따라서 독자들은 본『선집』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준에서 선택되고 종래와는 다른 뜻으로 해석되고 있는 많은 시가들을 만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이 우리의 어떠한 실천적 과제와 연결되기를 기대하는가에 대해서도 주목하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곧 이 '선집'의 이유이다.
그리고 이『선집』이 종래와 다른 기준에서 중국시가를 선별·해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본서와는 다른 기준에서 또다시 선별되고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는 부단히 다시 쓰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쓰여지는 역사야말로 당대의 실천적 과제 속에서 생환(生還)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환된 역사를 통하여 비로소 '역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란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살아가고 노동하는 방식 그 자체"이다. 따라서 시가(詩歌) 역시 인간의 삶과 노동과정 속에서 그것과 혼연한 일체가 되어 생장하는 것이다. 사회의 동질성이 해체·분화되어가는 과정에서는 문화는 마땅히 그 사회의 생산적 다수인 민중들의 삶과 생산노동 속에 그 뿌리를 뻗고 그 꽃을 피우고 그 열매를 돌려야 하는 것이다.
악(樂)이 인민을 이롭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악(樂)을 반대할 것이다"라고 갈파한 묵자의 말도 바로 이러한 관점에 서 있는 것이다. 묵자의 악(樂)은 시(詩), 가(歌), 무(舞)를 포괄하는 문화 일반의 뜻이다. 문화에 대한 이러한 관점과 주장은 문화를 소비과정의 소산으로 이해하는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매우 생소한 주장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보다 고급의 소비, 더 많은 소비가 더 높은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노동보다는 소비행위를 통하여 자신을 실현하거나 확인하려는 물신성(物神性)이야말로 우리시대의 거대한 정신적 함몰(陷沒)이 아닐 수 없다. 이 '소비문화'와 '상품문화'의 허구는 기실 인간을 삶과 생산의 주체로부터 유리시켜 그들을 대상화하고 소외시킬 뿐 아니라 결국 사회의 모순구조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지배기제로 기능 하는 것이다.
문화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에서도 문화란 어차피 잉여노동과 잉여생산물, 즉 재연(財衍)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문화는 당연히 묵자의 주장과 같이 잉여가치의 생산자인 인민을 이롭게 하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재연이 지배계층에 의하여 사유화됨으로써 문화도 지배계층에 의하여 독점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문화는 민중의 이익을 배반하고 압제를 합리화하는 내용으로 변질되었으며 결국 지배구조 그 자체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량계급의 비생산적인 악(樂)만이 고급의 문화로서 존숭(尊崇)되고 민중들의 쉽고 건강하고 생산적인 문화는 천박한 것으로 외면 당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시(詩)와 가(歌)는 이러한 일반적인 흐름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중국시가의 정신적 원류인 시경(詩經)은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민중들이 부르던 노래를 모아 기원전 500년경에 편찬한 인류 최고(最古)의 시가선집으로서 중국과 우리의 시가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야말로 경전이다. 이 시경은 지배계급의 시가보다는 민중의 고통을 살피려고 관리들이 수집한 민중의 노래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시경과 같이 민중의 노래를 수집하는 제도는 한 대(漢代)의 악부(樂府) 제도에도 계승되어 민중의 삶과 고통을 반영하는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시가의 이러한 전통은 각 시기의 시론(詩論)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중국 최초의 문학비평서인 유협(劉 , 466∼520)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는 "물(物)이 변하여 정(情)이 생기고 그 정(情)을 나타내는 것이 사(辭)"라는 물색론(物色論)을 주장하였으며, 512년에 발간된 중국 최초의 시 평론집인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에서는 시는 "인민의 생활과 감정을 줄기로 하여 형식과 색깔을 물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가장 오래된 작품집인 소통(蕭統, 501∼531년)의 문선(文選)에서는 문장이란 "사실이 깊은 생각 속에서 뜻이 되고 그것이 다시 아름다운 문장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는 인민의 고통을 알리는 것"이라고 단언한 두보(杜甫, 712∼770년)를 비롯하여 오늘까지 민중의 가슴속에 살아남은 시인들의 시론 또한 그 맥을 잇고 있다.
시대가 부패하고 쇠미해지면 시 또한 추상적인 것으로 변하여 민중으로부터 멀어진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한 말기적 시대에는 음풍농월의 시풍이 일어나고 형식주의와 유미주의를 핑계로 시는 민중을 외면한다. 이러한 부패한 시대에는 반드시 뜻있는 시인들이 일어나 시문혁신운동(詩文革新運動)을 일으켰다. 고문운동(古文運動), 신악부운동(新樂府運動), 시계혁명운동(詩界革命運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운동은 다름 아닌 시경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며 동시에 민중에게 다가서려는 운동이다.
애석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이러한 중국시가의 전통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이조 500년 동안 정치적으로 관료이며 경제적으로는 지주이며 사회적으로는 양반이며 문화적으로는 독서계급인 봉건 지배계층은 문자문화를 독점하고 민증의 삶과 고통을 반영한 시가를 배척하면서 자신들의 입장과 구미에 맞는 음풍농월만을 즐겼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중국 고전시는 물론이고 모든 시가는 민중과 동떨어진 한가한 양반들의 소일거리에 불과하다는 선입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시가의 전통인 민중시나 민증의 노래[詩曲]는 시집에서 제외되고 묻혀버려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대부분의 중국 시집마저도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에서 시들을 가려뽑고 있음은 물론, 때로는 시상(詩想)과 뜻이 본래의 시와는 반대로 해석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역자는 중국시가의 전통 속에 풍부하게 담겨있는 민중적 삶과 건강성이 이처럼 왜곡되는 것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시가의 진정한 모습을 온당하게 드러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당면한 실천적 기반을 심히 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80년대 이후 민중시의 신선한 등장과 기층출신의 뛰어난 민중시인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입관과 문화적 지반은 여전히 완고하고 협소하다. 역자는 틈틈이 중국시들을 읽고 그 속에 담긴 민중적 사실성을 접할 때마다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중국문학의 전공자가 아닌 역자들로서는 이러한 작업을 감당하기에는 적임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뜻 작업에 임할 수가 없었다. 망설임을 거듭하던 1989년 초에 역자들은 그동안 개인적으로 애착을 느껴 선시(選詩)해두었던 시가들을 기초로 하여 선시(選詩)와 번역을 시작하였다. 2년이 지난 1990년 말경에 일차적인 작업을 일단 마쳤으나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원고를 곁으로 밀어놓았다. 그후 중국과의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중국 쪽의 최근 자료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북경 인민문학출판사에서 4권으로 나온 중국역대시가선(中國歷代詩歌選)은 역자들이 그동안 뽑아놓은 시가들과 열에 일곱은 일치하여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중국역대시가선은 북경(北京)대학의 임경(林庚), 산동(山東)대학의 풍원군(馮沅君)을 책임자로 하여 10인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서, 중국의 고등과 중문계(中文系) 학생들의 중국시가과정 교재로 쓰기 위해 노래(詩曲)를 포함한 중국 역대 시가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가려 뽑은 것이다.
역자는 이『선집』의 편역에 있어서 선시(選詩)는 물론 위의 중국역대시가선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저본에 실린 시가의 상당부분을 제외하거나 그 외의 것으로 보충하였다. 이러한 산시(刪詩)의 과정은 역자들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가 얕아서 자칫 그 결과가 손상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마지막 교정이 끝날 때까지 줄곧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평소 존경해온 시인 김규동 (金奎東) 선생님과 한학의 원로이신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 선생님의 간곡하신 지도와 격려를 특히 밝히고 싶다. 김규동 선생님은 원고의 전문을 일일이 읽고 교정해 주셨으며 이구영 선생님은 이『선집』의 의의를 밝혀 비전공자인 역자들을 시종 격려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두 분 선생님은 위로는 시경의 '노동요'에서부터 아래로는 근대의 서구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는 '해방가'에 이르기까지 3천년간의 중국시가 가운데서 사상성과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고루 싣도록 선시의 기본방향을 권고해주시고, 그리고 시를 단지 시만으로 제시하지 말고 그 시대와 그 사람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시대적 배경과 인간적 편력을 부기하도록 하였으며, 또 역대 시가유파(詩歌流派)의 전개과정과 흐름이 반영되도록 편집의 기본방향을 지도해주셨다.
중국문학의 전공자도 아니며 더구나 시적인 소양이나 훈련이 전무한 역자들로서는 한문 특유의 압축된 의미를 간명하되 정확하게 전달하거나 한시 특유의 운율을 우리 운율에 맞게 바꾸어놓는 일이 처음부터 역량에 부치는 작업이었다.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 중국 고전 시가를 모아 선집하는 것도 처음이며 시·노래·민요를 하나의 시가집으로 묶는 일 또한 처음이기 때문에 이 책을 엮는 작업 자체가 워낙 방대한 분야를 넘나들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미처 주의가 미치지 못한 곳도 많고 옥석을 함께 버리거나 함께 취한 경우도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특히 종래의 해석과 전혀 다른 의미로 번역한 시들에 대해서는 사계의 전문가들로부터 상당한 비판과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선집』은 다만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민의 삶과 질고(疾苦)를 외면하지 않은 중국시가의 전통을 소개하는 데 최소한의 뜻을 두고 있을 뿐이다. 독자 여러분의 매서운 질정과 충고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한 질정을 통하여 이『선집』이 계속 다시 고쳐 써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몇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함께 묶어내지 못한 현재의 중국시가도 계속 정리하여 이 『선집』의 제5권으로 상재할 계획이다. 함께 출판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선시하여 격동하는 중국현대사 속에서 중국민중들이 감당해왔던 고뇌와 환희의 운명을 더불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할 것을 약속한다.
생산보다는 소비를, 사용가지보다는 교환가치를, 사람보다는 의상을, 우리 것보다는 남의 것을, 우리보다는 나 개인을 향하여 끊임없이 침몰해 가는 세월 속에서 이제 바야흐로 한 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과연 장구한 역사의 어떠한 지점에 서 있는가를 반성해보는 작은 계기로 이『선집』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여러분들의 후의에 대하여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적지 못함을 널리 혜량해주시기 바란다. 출판계가 어려운 이때 무거운 이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한 도서출판 돌베개 대표 한철희 님과 몇 달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골몰해주신 편집부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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