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부어주던 따스한 볕뉘 아버님께
다시 저의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곁에서 지낸 며칠간은 흡사 물밑의 고기가 잠시 수면을 열고 하늘을 숨쉰 것 같았습니다.
온몸에 부어주던 따스한 볕뉘와 야윈머리 정갈히 식혀주던 서늘한 바람은, 그곳에 마냥 머물고 싶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한 돌아와 이곳을 견디게 해주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6년 전 당시의 이야기에 더하여 어머님의 병고와 아버님의 수고를 직접 목격하고 나니 제가 감당해야 할 짐이 교도소 안에만 있는 줄 알았던 저의 좁은 소견이 매우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나 우선은 받은 징역을 짐질 뿐 아버님, 어머님의 아픔에 대해 그저 무력할 뿐입니다.잠실의 아침 호숫가를 어머님과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어머님께서 꾸준히 보행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님의 조속한 쾌차와 아버님의 너그러우신 두량(斗量)을 바랍니다.
저는 행여나 붙어 있을 속진(俗塵)을 말끔히 떨고 이제 제게 주어진 현실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두 분 누님께도 안부 드립니다.
1984.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