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뽑으며 계수님께
잔디밭의 잡초를 뽑으며
아리안의 영광과 아우슈비츠를 생각한다.
잔디만 남기고 잔디 외의 풀은 사그리 뽑으며
남아연방을 생각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생각한다.
그리고 운디드니의 인디언을 생각한다.
순화교육시간에 인내훈련 대신 잡초를 뽑는다.
잡초가 무슨 나쁜 역할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잔디만 남기고 잡초를 뽑는다.
도시에서 자라 아는 풀이름 몇 개 안되는 나는
이름도 모르는 풀을 뽑는다.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잡초가 된 풀을 뽑는다.
아무도 심어준 사람 없는 잡초를 뽑으며,벌써 씨앗까지 예비한 9월의 풀을 뽑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잘 알고 있던 것 같은 것들이 갑자기 뜻을 잃는다.
구령에 따른 동작처럼 생각 없이 풀을 뽑는다.
썩어서 잔디의 거름이 될 풀을 뽑는다.
뽑은 잡초를 손에 쥐고
남아서 훈련받는 순화교육생을 바라본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원산폭격, 한강철교의 순화교육생을 바라본다.
뽑혀서 더미를 이룬 잡초 위에 뽑은 잡초를 보태며
15척 주벽(周壁)을 바라본다. 주벽 바깥의 청산(靑山)을 바라본다.
추석 쇠라고 보내주신 돈 잘 받았습니다.
사과, 빵, 과자 그리고 명절이라고 특별히 판매한 떡도 사고 해서 함께 사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추석 전후해서 며칠간 까맣게 불꺼졌던 충남방직공장의 여공 기숙사 창문도 어제부터 일제히 불켜져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짧은 추석입니다.
화용, 민용, 두용이 모두 잘 크고 가내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1984. 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