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사는 세월 아버님께
그간 형님께서 여러 차례 다녀가셔서 소식이 적조하지는 않으셨을 줄 믿고 있었습니다만 막상 필을 들고 보니 매우 오랜만에 글월 드림을 깨닫습니다. 어머님 환후는 어떠하신지, 지금쯤 가벼운 걸음이라도 하실 수 있으신지, 그리고 아버님께서는 집필과 어머님 병구완이 힘겨우시지나 않으신지…….
엽서 위에 잠실집의 여기저기가 선히 떠오릅니다.
어머님의 병환과 아버님의 수고, 그리고 집안의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저로서는 힘이 미치지 못하는 먼 곳(?)의 일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덜 무겁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더 무겁습니다.
이곳의 저희도 별고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만 금년 9, 10월은 잡다한 일 치닥거리들이 줄줄이 연달아서 돌이켜보면 심신만 수고로웠을 뿐 생활에 진보된 바가 태무(殆無)하고 보니 겨울을 뒤에 숨긴 가을바람이 유난히 스산하게 느껴집니다.
잡사(雜事)에 부대끼면서도 자기의 영역은 줄곧 확실하게 지켜야 하는 법인데 그간의 징역살이로도 모자라 여태 이력이 나지 않았다면 이는 필시 저의 굳지 못한 심지와 약한 비위(脾胃)의 소치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월이 아직 남았으니 그전에 서서히 제 자신을 다그쳐서 무릎 꿇고 사는 세월이 더는 욕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겠습니다.
어머님께서 걱정하시는 겨울이 다가옵니다.
옥창(獄窓)에서 내다보이는 충남방직공장의 기숙사 창문이 가을이 깊어갈수록 밤이면 더욱 형형한 빛을 발합니다. 옛 시구에 영인맹성시신종(令人猛省是晨鍾)이라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무섭게 깨닫도록 하는 것이 새벽 종소리라 하였습니다만 저로 하여금 맹성(猛省)케 하는 것은 철야작업으로 새벽까지 꺼질 줄 모르는 기숙사 창문의 불빛입니다.
호창불능침 사아기좌독(皓窓不能寢 使我起坐讀). 공장의 불빛은 책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합니다.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은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도 밝혀줍니다.
1984.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