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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금요일, 모두모임 전날 서울로 나가 종합검사를 받기로 한 예약 날이었다. 전날 밤 딸 아이가 보드 타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목요일 밤에 그렇게 많은 눈이 올 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흔쾌히 다녀오라고 허락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은 눈뿐이었다. 그 눈 속에 2륜 구동인 내차로는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겨우 이정도인데,’
그렇게 얕잡아 보다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길에서 약간의 눈도 치명적이란 사실을 위험한 고비를 몇 번 넘겼던 경험으로.
이제는 겁이 나 눈이 오면 아예 운전대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떡하지, 병원 예약시간이 아침 8시인데…… 서울로 나가야하는데……”
거실을 왔다갔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열심히 보드를 챙기는 딸년도 귀가 뚫렸으니 내가 걱정하는 소리를 분명 들었으리라
병원에 종합검사 예약 날을 잡기까지 6개월을 기다렸다.
행여나 엄마가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말이 나올까봐 딸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귀신에게 잡힐까봐 걸음아 나살려라 듯 도망치듯  4륜 구동의 차를 끌고 나가버렸다.

병원에 전화를 거니 곧 해가 끝나 예약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그 해까지 받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검사였다. 귀찮아 지금껏 받지 않다 큰 맘 먹고 모처럼 공짜로 10%만 내고 받으  려고 마음잡고 6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 놓았는데…… 역시 박명아는 공짜와는 운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딸년의 행동이 너무나 괘씸했다.
종합검사를 받기 위해 전날 9시부터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은 내 몸은 딸에 대한 미움과 함께 바짝 타들어갔다.
‘ 이년을 내가 한 푼도 물려주나 봐라. 내가 다 쓰고 다 먹고 죽을 거다.’  다짐하며 금식이 필요 없어진 나는 입 안 가득 밥을 퍼 넣고 꾹꾹 씹으며 다짐했다.
‘흉 각각, 정 각각이라고, 내가 저런 년을 믿고 어디 두고 보자.’  복수를 다짐했다.
종합검사고 모두모임이고 결혼식이고 다 물 건너 가버린 나는 이틀을 목구멍에 밥이 다시 넘어오도록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를 반복했다.
입시 때문에 새벽부터 밤까지 미술학원을 다니기 위해 서울 제 이모집에 가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입이 찢어지게 제 누나 흉을 봤다.
“누나 정말 개념이 없다. 도대체 뭘 생각하고 사는 거야. 그렇지만 엄마가 이해해, 한참 젊은 나이잖아.”
가재는 개편이라더니 이놈 역시 결국엔 한패였다.
하긴, 언젠가 학교에 데려다주며 아들에게 물었었다.
“재홍아, 네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좋아하고 자신 있는 것이 무엇이니?”
녀석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미술은 내가 좋아하지만 자신 있다고는 할 수 없고…… 음…… 맞아, 내가 제일 자신 있는 것은 한 여자를 사랑하면 그 여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목숨을 바쳐 끝까지 사랑할 수 있어. 그것은 자신 있어!”
‘잘났다, 정말, 이놈도 싹수가 노랗다. 이놈 역시 좋아하는 년이 생기면 내 편이 돼 줄  는 없겠구나. 어느 바보 놈이 장가를 들더니,
‘엄마, 우리 각시가 풀 먹인 옷은 밥풀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뜯어 먹을 것이 많은데 엄마가 풀 먹인 옷은 뜯어 먹을 것이 없어서 나빠.’ 라고 한다더니 이놈이 바로 그런 놈이구나, 싶었다.
갑자기 나는 빈 들판에 버려진 엄마였다.

토요일 저녁 딸에게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엄마 놀라지 말고 들어, 보드 타다 친구가 무릎이 나갔어. 그래서 밤새 병원 응급실에 있다 지금 올라가는데 차가 너무 밀려 10시간 째 고속도로에 갇혀있어. 나 천벌 받았나봐, 엄마 병원에 데려다 주고 맛있는 점심이나 사 달라고 해서 먹고 들어오는 건데,”
'놀라다니? 내가? 왜?'
그 때의 마음은 설사 딸년이 무릎이 나갔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알긴 아는구나! 그래, 엄마 마음 그렇게 서운하게 해 놓고 네가 보드 잘 타고 신나게 놀 줄 알았니? 난 어미 마음 아프고 속상하게 만들어놓고 잘 사는 자식들 못 봤다.”
“그래, 그래서 나 지금 천벌 받고 있어……”
풀이 죽어 죽어가는 소리 들으며 조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길 미끄러운데 조심해서 올라와.”
그렇게 말해 놓고 난 또 모두 건너간 빈 들판을 서성거렸다.

결혼식

내가 계속 성을 바꿔 정동영으로 부르던 김동영 나무의 결혼식이었다. 이틀 동안을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를 반복한 나의 위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비명을 막기 위해 우울증 약을 응급실에 가지 않을 정도로만 조금씩 먹고 계속 잤다. 자면 통증을 잊을 수 있으므로. 그래도 위암으로 죽긴 싫어(너무 아프므로) 친구 병원으로 가서 부랴부랴 내시경을 받았다. 위는 아무 이상 없단다. 십이지장까지. 그렇게 아픈데 아무 이상 없다니, 나의 피부는 위까지도 좋은 것 같았다.

눈은 왜 이렇게 계속 오는지……
눈이 오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우리 집 강아지뿐.

눈이 유독 잦은 올해 어느 날,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절대 놀라지 말고 잘 들어.”
“내가 또 놀랄 일이 뭐가 있겠니? 뭔데?”
“지금 내 자동차가 눈길에 뒤집혀서 난 엉금엉금 기어 나왔어. 그런데 엄마! 절대 놀라지마! 나 한 군데도 다친 데는 없어!”
“뭐라고? 눈발이 겨우 이 정도인데 네 자동차가 뒤집어져? 너 또 급하게 차 몰았지?”
“아냐! 정말 조심조심 몰았어! 정말이야!”
“거기 어딘데?”
“우리 집 나와서 적성인데 일부러 안전한 길로 돌아왔단 말이야. 그런데 미끄러졌어.”
“어떻게 미끄러져 차가 뒤집혀?”
“몰라 그냥 차가 미끄러져 안전대를 넘더니 논으로 뒤집어졌어. 난 뒤집어지는 순간 죽는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기어 나왔어.”
“뭐! 병원에 안 가도 돼? 어디야? 어디?”
“엄마 차로는 올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 그리고 나 다친데 없어. 그러니 제발 놀라지 말고 흥분하지 마, 나 괜찮아, 지금 신고 해서 락카차 기다리고 있어.”
순간, 빈 들판이고 꽉 찬 들판이고 내 눈앞에서 모두 사라졌다.
내가 너무 원망을 해서 이 것이 이렇게 되었나, 싶어 온 몸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차가 완전 망가져 다시 만들어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여름에는 집으로 들어오던, 아들이 탄 택시가 서지 않고 그대로 급발진을 해 베란다를 들이박고 내 눈 앞에서 허공을 날라 밭으로 떨어지더니…… 나도 아들도 순간 ‘죽었구나,’ 아득하며 제 정신이 아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아들은 아무 이상 없었다. 하지만 놀란 충격은 오래갔었다. 도대체 우째 이런 일들이 이렇게 일어나는지 고사라도 지내야 할 것 같았다. 아니면 평소에 내가 너무 덕을 쌓지 못했거나.
아들이 탄 택시는 폐차 시켜야 했지만 아들이 무사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넘어갔다. 딸의 차는 지금도 공장에 있다.

신년산행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면 혼이 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덕인지 그렇게 산을 싫어하던 딸이 이번 신년 산행에는 순순히 자신이 운전을 해주고 따라간다고 했다. 그 대신 등산화를 사줘야했지만.
그런데 신년 산행 아침에 또 눈이 왔다. 딸의 4륜구동 차는 아직 공장에 있는데 ……하늘이 막는구나, 하긴 골다공증에 혹시라도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부셔져 수술을 하고 꼼짝을 못하고 살아야 한다니까. 그렇게 수술을 받고 꼼짝 못하고 살던 사람의 사망률이 50%에 이른다니, 어쩌면 하늘이 그것을 막아주느라 그런 거겠지, 그렇게 억지로라도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했다.

“지금 나이에 골다공증이 온 다는 것은 너무 빠릅니다. 그리고 아무리 칼슘제를 먹어도 비타민 D가 형성되지 않으면 칼슘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비타민 D는 햇빛을 받아야 만들어지니 소위 말하는 미친년처럼 나돌아 다니세요. 자외선이 무서우면 얼굴만 가리는 모자를 쓰고 손과 팔은 햇빛을 받도록 나다니세요.”
“지금도 우울증약을 먹고 있는데 거기다 또 미친년처럼 나다니면 저…… 머리에 꽃 꽂고 다니게 되는 건 아닐까요?”
“하하, 우울증도 너무 안 먹어 걸리는지도 몰라요. 지금 워낙 체중이 안 나가서 골다공증에 걸린 확률이 높으니 많이 드세요.”
“너무 많이 먹어 뚱뚱하면 골다공증 대신 관절염에 걸린다면서요?”
“아무리 먹어도 지금 상태에서는 관절염에 걸릴 만큼 뚱뚱해질 확률은 낮으니 드세요. 그대신 탄수화물은 반으로 줄이세요. 지금 저혈압에, 당뇨는 없고 기름기는 안 먹는데 골다공증에 콜레스테롤이 높으니 혈액이상 지혈증입니다. 고구마, 과일, 쪼초렡, 떡, 감자, 빵, 사탕, 밀가루 음식은 드시면 안 됩니다.”
“저 그렇게 혈액에 지방이 낄 정도로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고 기름진 것을 먹는 것도 아닌데요?”
“혈액 이상 지혈증은 유전입니다.”
“유전이요?”
‘젠장, 물려 줄 것이 없어서 기름기를 먹지도 않는데 콜레스테롤이 높은 혈액이상 증후군을 물려 주셨나.’
“그런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이 제가 전부 좋아하는 건데 그걸 안 먹으면 뭘 먹고 살지요?”
“고기 드세요. 닭가슴살, 야채, 생선, 올리브유 그리고 30분 이상 운동, 등산, 걷기, 줄넘기, 조깅, 수영”
“고기도 전 별로 안 좋아하고…… 움직이는 것도 정말 싫은데……”
“오래 건강하게 살려면 단백질 음식 먹으며 운동하셔야 해요.”
“별로 오래 살고 싶은 생각 없는데요.”
“그래도 건강하게는 살아야지요.”
“네, 아파 누워서 자식들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하루 30분 동안 꼭 운동하시고 억지로라도 저지방 고기 드시고 현미밥 드세요.”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이 아니라 꼭 하셔야해요. 지금 빈혈증도 있는데 일단 정확한 검사는 빈혈추적을 받아야하니 피 빼고 가세요.”
“빈혈인데 또 피를 빼야해요?”
“병을 이기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해야지요, 허허”
사람 좋게 생긴 가정의학 담당 선생님은 언제나 그렇듯 웃으며 대답했다.
난 문득 묻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매일 웃으며 세상을 즐겁게 살 수 있지요? 저에게도 알려 주세요.”


신년산행을 눈 때문에 포기한 나는 내리는 눈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앉아있는데 뭐가 눈앞에 뭐가 왔다 갔다 했다. 올려다보니 딸년이 등산화를 신고 거실을 서성이고 있었다.
“뭐하니?”
“응, 등산화를 샀는데 신고 갈 데가 없어져서 이렇게 신고 거실을 걸어 다니고 있는 거야.”
난 꾹, 하고 웃음이 났다.
언젠가 졸업여행 날짜를 잘못 알아 여행을 가지 못한 내가 수영복을 입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며.
‘자식은 이렇게 닮는구나.’

"설마 5월 스승의 날엔 눈은 안 오겠지?"
"모르지, 그땐 홍수가 날지."
딸은 그렇게 대답하고 계속 걷고 있었다.

빈 들판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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