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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 때인 것 같다.
그 때 20살이 던 큰언니는 날이 새면 아침신문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다 신문이 오면 급하게 펼쳐 한 곳만 읽고 그렇게 목마르게 기다리던 신문을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도대체 그 한 곳이 무엇이기에 언니를 저렇게 기다리게 하나, 궁금했다. 언니가 읽고 던져버린 신문을 펼쳐 언니의 눈이 갔던 곳을 찾아보았다.
그곳은 맨 아래쪽에 있는 소설 연재란 이었다. ‘휘청거리는 오후’ 초등학생이었던 내겐 작가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 후로 나도 ‘휘청거리는 오후’에 독자가 되어 매일 언니와 함께 신문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당시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박완서의 ‘휘청거리는 오후’ 등이 인기리에 연재되었고 신문 연재물에 따라 판매매수가 결정되기도 했던 시대였다.

그 후 난 성인이 되어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남자의 집’등을 읽으며 초등학생인 내가 열심히 읽던 ‘휘청거리는 오후’의 작가가 바로 박완서라는 사실을 알았다.
전쟁의 아픈 가족사를, 그로 인한 자신의 아픔을 글로 풀어내는 박완서에게 나는 매료되었다. 특히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를 읽으며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숨기고 싶었을 텐데, 라는 생각과 함께 그 후부터 그녀가 숨기고 싶었을 내용을 이렇게 솔직히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내 나름대로 찾아내었다.
그녀는 바로 자신의 한과 아픔을 글로 통해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누에가 자신의 꼬리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듯, 그렇게 자신 안에 담아 있는 한을 뽑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박완서는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아주 오래된 농담’ ‘친절한 복희씨‘' 등을 통해 자신에서 타인에게로 눈을 돌려 타인들이 그들의 아픔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혹은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지를 작가의 예리한 눈으로 통찰하고 있다.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고 있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사를 작가의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통찰하여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아픔을 말하고 있는 그녀,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결코 아프게 쓰지 않는, 그녀가 쓰는 농담처럼 글을 쓰고 싶다, 는 것은 그 후 나의 화두가 되었다.
그녀가 여성동아에 ‘나목’으로 등단한 나이가 40, 나는 몇 달만 있으면 그녀가 등단한 나이보다 10년이 더 많은 50이 된다. 내가 20대 때 50살이 된 여자를 여자로 생각했던가.
어쨌든 나는 몇 달만 있으면 젊었을 때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평생 나에게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나이, 반세기를 산 여자로, 몇 광년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50이란 나이가 된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짧은 나이가 된 것이다. 앞으로 내가 글을 쓸 수 있을지, 쓰지 않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박완서라는 작가가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작가라는 사실만은 변할 것 같지 않다.

2년 전에 적어 놓은 글이다.
이 글을 지금 올리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아무리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라지만.
눈은 아침부터 시나브러 내린다.

하늘을 본다.
눈꽃 마차를 타고 가시려나.

애 많이 쓰셨습니다.
편히 가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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