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살이에 이골이 난 꾼답게 아버님께
어머님과 집안 식구들 자주 현몽(現夢)하여 내심 기우(杞憂)라 여기면서도 문득문득 염려됩니다. 어머님 환후는 어떠하신지, 아버님 기력은 여전하신지, 형님과 동생의 소관사(所關事)는 순조로운지……, 하나마나한 걱정입니다만 그때마다 염려됩니다. 아마 그동안 적조한 탓이라 생각되어 오늘은 사연도 없이 붓을 들었습니다.
이곳의 저희들은 별고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더위 먹어 밥맛 떨어지더라도 물 말아 꼬박꼬박 한 그릇씩 비우고, 운동시간에는 웃통 벗어 몸 태우고, 속옷 자주 빨아 입고……. 오랜 징역살이에 이골이 난 꾼(?)들답게 우청한서(雨晴寒暑)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일없이 묵묵히 당장의 소용에 마음을 쓰되 이를 유유히 거느림으로 해서 동시에 앞도 내다보는 그런 자세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전주로 이송온 지도 벌써 1년 반입니다. 그동안 새 친구를 많이 사귀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는 이송 온 타지 사람들도 많고, 대부분이 연방 드나드는 단기수(短期囚)들이기 때문에 1년 반밖에 안됐지만 이젠 제법 신참티를 벗어가고 있습니다.
전주 와서 첫밤 자고 난 새벽에 십수년 들어왔던 기상 나팔 대신에 은근히 울리던 기상 종소리에서 매우 평화스러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종소리가 아니라 산소 땜통을 때려서 내는 소리임을 알고는 실망과 함께 고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사람 키만 하고 무슨 포탄같이 생긴 산소아세틸렌 용접가스통을 매달아놓고 나무망치로 몸통 중간짬을 치는 장면은 제가 처음 느꼈던 감동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실인즉, 나팔소리든 종소리든 산소 땜통소리든 그 소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서로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감동이었건 실망이었건 고소였건 그것은 처음부터 저 혼자만의 감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장마 걷히고 바야흐로 뜨거운 8월 볕 앞두고 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건안(健安)하심을 빕니다.
1987.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