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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가리 없는 잡담 다발
계수님께


어머님을 비롯하여 가내 무고하시리라 믿습니다. 이곳의 우리들도 건강하게 그리고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밀린 일거리 때문에 10시까지 잔업입니다. 나도 거의 매일 잔업입니다. 땜통 미싱사라 1조, 2조, 3조, 4조 어느 조든 빠진 자리에 가 앉아 일합니다. 덕분에 친구도 많고 얻어듣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오늘은 잔업시간에 오가는 우리들의 졸가리 없는 잡담 다발 소개합니다.

 

성근이 잔업 잡혔구나. 안됐다. 감기몸살 엉까도 안 먹혔구나. 작업반장이 얼마나 빠꾸미라고. 곰보새끼 들어갔냐? 형님 여기 계신다 아우야. 곰보라니 문화재(文化財)보고. 겁을 상실한 애들인께. 야 몰짝 나왔다. 이것 봐라, 춘길이 솜씨지. 해태누깔이로구나. 미싱깨나 밟았다는 늠이. 인철이 오늘 보온메리 소포 받고 더 울쌍이냐. 마누라가 없는 돈에 사 부쳤는데 맴이 맴이간디. 어께는 쌍가사리 때리는 거지? 나는 아무래도 도둑놈 체질이 못 되나봐. 도둑님이라 그러지. 야, 이 팔개월 반 만에 가출옥으로 나온 놈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체질이 무슨 놈의 체질이야. 있어, 있어. 너는 진짜 체질이다. 아니야 걔는 영숙이 잘못 사랑해서 징역 들어온 거라고. "바위섬…… 나는 네가 조오아서……." 제 노래 솜씨 어때요? 푸로 이상이야, 서툰 기교도 안 부리고……. 저치 신선생 칭찬 들어서 계속 시끄럽게 생겼구나. 주제파악 좀 해라. 동석이형 태백산맥 3권 누가 보고 있나 지금.
영희 미싱 세워놓고 어디 갔어! 빨래하러 갔어. 작업 바쁜 줄 아누만. 작업반장 맥킨콜이야. 맥골이다 맥골. 고무풍선을 꽉 잡으면 손구락 새로 삐져나오잖아. 그 삐져나온 걸 또 꽉 잡으면 어떻게 되겠어?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펑이지 펑. 내일 불교집회 안 갈텨? 비디오 가지고 온대. 떡 가지고 온다면 가지. 역시 너는 떡신자야. 비디오 제목이 뭐래? 뭐긴 뭐겠어, '소림사 주방장'이지. 때가 크리스마스 땐디 먼 불교여. 상영이 너, 전성시대가 몇 년도야. 묻지 마라. 과거가 험한 사람한테는 과거가 고문이야. 니가 왜 끼어드냐. 그게 어디 제대로 된 전성시대냐. 동인천 그 왜 생낙지집 있지. 야야, 먹는 얘기 좀 사양 안할래. 그것도 고문이야. "내 청춘의…… 빈 노트에 무엇을 채워야 하나……." 야, 잠 좀 자자. 노래 다칠라. 스피커에서 지금 나오고 있잖아. 암만 나오더라도 그렇지, 빈 노트가 어딨어. 너나 나나 고생고생 엉망진창 노트다. 우리한테는 못 맞는 노래다 임마. 그래그래. 있는 집의 할일 없는 애들 노래야. 노래 잘못 골랐다가 몰매 맞는구나. 내내 그렇다니까. 가위 가져가신 분? 안 계십니까? 서울말로 욕치겠습니다. 내가 첨으로 양복일 배울 때 말이야, 쥔집 아줌마가 그러더라고. 너 이 단추구멍 예쁘게 치면 이담에 이뿐 마누라 얻는다고 그러더만, 진짜 이쁘게 쳤지. 그래서 이쁜 마누라 얻었어? 지금까장 수많은 단추구멍 이쁘게 쳤건만 이쁜 마누라커녕, 미운 마누라도 없어. 야 너 땀수 몇 단 놓고 박는 거야! 이 자식 막 건너뛰는구나. 삼부요인이 누구누구야. 어제 우리 방에서 심리 붙어갖고 한참 시끄러웠다. 단독주택인데 말이야, 뒷담으로 들어가서 안방일 보고 나오는데 대문 옆에 도사견이 떡 버티고 있더먼. 꼼짝 마라구나. 아니야, 건데 웃겼어. 비싸도 개는 개더만.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면 달려들거나 짖었을 텐데 말이야, 안방에서 턱 나오니께 이게 헷갈리나봐. 고개만 갸웃갸웃하더라고. 비싸도 개는 개더만. 건데 개장에 통닭 남아도는 거 있지……. "이제는 졸립구나……." 용수, 참새의 하루 불르는 게 시간됐나 보구나. 저 시계 5분 늦어. 한번은 들어갔는데 있지, 강짜들이 먼저 들었어. 보니께 안방에다 묶어놓고 이 새끼들, 막 일을 벌일 참이야. 폼들이 타짜가 아니야. 아무리 밤중이지만 바깥에 삥도 안 세워놓고 말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야구방망이 있지, 그거 마당에 있더만. 이 새끼들 기겁했을 거야. 창문도 박살났지. 그치들 우리가 방범인 줄 알았을 꺼야. 우리도 물론 잽싸게 토꼈지. 어이. 기계수리! 여기 모타 좀 봐줘, 열 너무 받는데. 오늘 미싱 밟은 것만큼 오토바이를 밟았으믄 집에 갔다오고도 남을 텐데. 너는 운쨩으로 사고 내고 미싱사로 돌았다며?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샀구나. 그런데도 징역 들어왔잖아? 사연이 길어, 다 얘기하자면. 육갑 떨고 있네. 다 물어봐라, 너만한 사연 없는 놈 있는가. 도구 반납! 작업 끝이다. 천천히 가, 세면장 만땅꼬야. 춘데 씻긴 뭘 씻어, 발만 씻자…….

 

입방 길에 잠시 운동장에 서면 누구나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흑청빛 하늘에 무수히 박혀 있는 별들.
수억 광년 수십억 광년의 광대한 우주. 일순 교도소의 주벽이 바짝 우리의 몸을 죕니다.
수고했어요. 수고했어요. 잘 자. 편히 쉬세요. 수고했어요.
잠든 동료들의 안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하여 낮게, 낮게 나누는 인사말, 좀 전의 농끼라곤 한 점도 찾을 수 없는 숙연할 정도로 진지합니다.

 

1987.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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