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이 문 재
나, 죄 조금 짓고
많이 뉘우치며 살 줄 알았다
밤새도록 번개 칠 때
엘리베이터가 공중에서 멈출 때
분만실 앞에서 서성거릴 때
비행기가 뒤늦게 이륙할 때
생년월일시를 댈 때
땅에 넘어진 자는
넘어진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지 않고서는
일어설 수 없다
나, 죄 많이 짓고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살았다
나, 죄에 걸려 넘어지고서도
그 죄를 온몸에 묻히려 하지 않았다
* 인지이도자 인지이기(因地而倒者 因地而起) : 보조국사 지눌의 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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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앉아서 묵상아닌 묵상을 하다
스쳐가는 얼굴들 속에서 이 시가 문득 떠올랐다.
그랬다.죄 많이 안짓고 사는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