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글은 1997년 1년 동안 중앙일보에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기획으로 연재된 글입니다. 세계의 역사 현장을 찾아서 20세기를 되돌아보고 21세기를 전망하는 기획이었습니다. 그동안 《더불어숲》 1,2권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한 권으로 묶었습니다. 두 권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독자들의 의견을 따랐습니다. 합본 과정에서 처음 생각과는 달리 별로 고쳐 쓰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느꼈습니다만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20세기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백 년, 그리고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는 전환기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미래를 전망합니다. 이 글들도 기본적으로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과거의 무게와 미래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새로운 미래가 과거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의 의미를 성찰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하였습니다. 여행을 끝내고 나서 더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언설(言說)을 쏟아놓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언설들은 객관적 전망과 관련된 부분에서도 나의 주관적인 소망에 기울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그것이 짐으로 남을 것입니다.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에서 시작해서 중국의 태산에서 마지막 엽서를 띄우는 것으로 끝마쳤습니다. 매주 한 번씩 일 년 동안 모두 47번 엽서를 띄웠습니다. 참 많은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참 많은 시대를 만났습니다. 지구의 남단에서 북단까지 그리고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공(時空)을 누빈 셈입니다.
여행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城) 밖으로 걸어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성(城)의 의미가 비단 개인의 안거(安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오랫동안 안거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떠나고 새롭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랬지만 주위 사람들도 그런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의 드네프르 강 언덕에는 전승기념탑(戰勝記念塔)이 서 있습니다. 2차대전 떄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의 침략을 물리친 전승을 기념하는 탑입니다. 나는 그것이 전승기념탑인 줄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언덕에 서 있는 여인상(女人狀)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승기념탑과는 너무도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의아해하는 나에게 안내자의 설명이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전승이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어머니가 서서 기다리는 것, 그것만큼 전승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전승기념탑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워싱턴에 있는 전승기념탑이었습니다. 해병 병사들이 역동적인 동작으로 성조기를 고지에 세우고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기념탑의 조형성에 관한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전쟁에 대하여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천박함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전승은 적군을 공격하여 진지를 탈환하거나 점령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미국적 사고와 문화가 우리의 심성을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쉽게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개구리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풀섶에서 두꺼비를 만났을 경우 대체로 눈앞의 두꺼비보다 머릿속의 개구리를 먼저 보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이러합니다. 우리는 결코 떠날 수 없는 자리에서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땅에 뿌리박은 한 그루 나무일 뿐입니다. 삶이란 비록 그것이 감옥처럼 고인 세월이든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이든 지나간 세월은 어김없이 우리들의 가슴 속에 깊숙이 들어와 결코 떠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유적들 앞에서 매번 확인한 것은 장구하고 육중한 역사의 무게였습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본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확인은 매우 쓸쓸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청산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렇고, 완고한 현실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쌓아온 '생각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성(城)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세기를 떠나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재 속에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20세기의 실상을 직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떠남에 대한 기대와 새로운 만남에 대한 환상입니다. 떠나지 못한다면 만날 수도 없는 법입니다. 만남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고 함부로 재구성하는 것은 오만(傲慢)이며 삶과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시원히 떠날 수 없듯이 그들 역시 떠날 수 없는 그들의 과거를 짐 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였습니다. 어느 곳의,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든 그들은 저마다 최선(最善)을 다하여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 땅의 최선이었고 그 세월의 최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존중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이 만남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적지는 물론이며 세계의 곳곳에서는 그러한 최선의 결정(結晶)들이 여지없이 깨어진 흔적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땅, 그 사람들의 최선을 업신여기고 서슴없이 관여하고 있는 강자(强者)의 논리를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자의 논리는 비단 정치, 경제적인 지배력을 장악함에 그치지 않고 과거 유적의 미학(美學)까지도 재구성함으로써 사람들의 심성마저 획일화하고 있었습니다.
군자는 화(和)하되 동(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화(和)의 원리입니다. 이에 반하여 동(同)의 논리는 병합하여 지배하려는 획일화의 논리입니다. 세계화는 바로 이러한 동의 논리였습니다. 패권적 지배이며 일방주의적 강제와 오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강제와 오만에 대하여 다투어 영합하고 있는 모방(模倣)과 굴종(屈從)의 세계화였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최선에 대한 애정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는 고사하고, 무엇이 진정으로 강한 것이며 무엇이 진정으로 약한 것인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無知)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는 저마다의 발밑에서 물을 길어올려야 한다는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나무들이 더불어 우람한 역사의 숲을 만든다는 진리를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은 돌아옴(歸)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되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귀중한 공부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국내 기행까지 합한다면 2년 간의 여행이었습니다. 많은 욕심을 부린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행자는 일하는 사람이 아닌 지나가는 과객(過客)이었습니다. 겸손한 배움의 기행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엽서를 띄우고 숱한 언설을 쏟아놓았습니다. 그것이 매우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번에 두 권을 한 권으로 합본하면서 내가 띄운 엽서들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급하게 꾸린 가방처럼 여러 곳의 기억들이 어지럽습니다. 처음에는 대폭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역사(歷史)가 다시 쓰는 현대사이듯이 자신의 글 역시 계속해서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으로 수정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잘못을 변명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원고를 일독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노고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세계 기행을 기획한 분들에서부터 함께 현장을 찾아다니며 고생한 사진기자들 그리고 현지에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의 얼굴을 행간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과 다시 여행하는 듯한 감회를 느꼈습니다. 흐뭇한 추억의 생환(生還)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합본 과정에서도 많은 분들께서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에 일일이 감사의 말씀을 적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침 겨울 방학을 맞아서 원고를 다시 읽어보고 서문을 쓰는 일을 강원도 산골짜기 외딴집에서 하고 있습니다. 궁벽한 산중이어서 지난 해의 적설 위에 계속해서 신설이 쌓입니다. 이곳은 봄이 올 때까지 내내 설국(雪國)입니다. 밤이면 세찬 겨울 바람이 나목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동토(凍土)에 발목 박고 봄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2003년 2월 미산계곡에서
신 영 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