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은 이상의 예정된 운명입니다. 그러나 이상은 대지에 추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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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코드 광장의 프랑스 혁명
추락은 이상의 예정된 운명입니다. 그러나 이상은 대지에 추락해야 합니다
“바스티유 광장으로부터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길. 이 길이 프랑스의 근대사이다”
이 말은 프랑스 혁명사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들이 이 길을 무대로 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 루부르 궁전, 시 청사가 이 길에 있으며, 시민들이 최초의 무장을 갖추었던 폐병원, 나플레옹이 대관식을 올린 노트르담 사원, 그리고 혁명과 반혁명의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이 단두되었던 기요틴 등 혁명의 시작과 끝이 이 길에 총총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함락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혁명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인류사가 겪었던 모든 혁명의 모든 국면과 명암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계급의 원망과 소망을 남김없이 분출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얼굴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장대한 드라마로 진행되었습니다. 음모와 배신, 정의와 공포, 산악과 평원 . . . .이 모든 것이 뒤엉켜 달리는 산맥의 질주였습니다.
나는 바스티유 광장으로부터 콩코드광장에 이르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프랑스혁명의 시작과 끝을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답파한다는 송구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혁명 이전의 1천년과 그 이후의 200년을 동시에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프랑스혁명이기 때문입니다.

 

바스티유 광장에는 물론 감옥이 없습니다. 광장의 포도 위에 남아 있는 담황색 초석의 긴 띠가 평면도처럼 감옥의 형체를 짐작케 할 뿐입니다. 남아 있는 자취가 없기는 콩코드 광장도 마찬 가지였습니다. 나는 콩코드 광장 어딘가에 있었던 기요틴의 자리를 찾아보는 것으로 파리 여정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롯하여 민중의 벗이던 당통, '혁명의 양심'으로 불리던 베스피에르와 혁명의 화신 생쥐스트마저 이 기요틴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중세 1,000년이 단두되었던 곳이며 동시에 혁명의 새 싹이 단두되었던 곳입니다. 그러나 광장의 어디에도 기요틴의 자취가 없습니다.

 

나는 프랑스의 젊은이를 앞세우고 기요틴의 정확한 지점을 찾아가보았습니다. 광장의 포도였습니다. 루이 15세 기마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워졌던 기요틴은 이제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이 지나는 광장의 일부가 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만나는 어려움을 실감하게 됩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어차피 역사를 해석하는 것일 터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콩코드 광장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콩코드 다리였습니다. 이 다리는 바스티유 감옥을 헐어 그 돌로 만든 다리입니다. 감옥의 벽이 되어 사람을 가두고 있던 돌들이 이제는 사람들을 건네주는 다리로 변해 있다는 사실에도 혁명의 의미는 담겨 있을 것입니다. 콩코드 다리 아래로는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센 강이 교각을 적시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혁명이란 당신의 말처럼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미지의 작업입니다. 따라서 먼저 인식의 혁명이 요구됩니다. 낡은 틀을 고수하려던 특권층이나 그 낡은 틀의 억압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인식은 확실한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특권층이나 농민들의 인식과는 달리 이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파의 구상은 당신의 말처럼 관념적으로 선취된 이상과 그 이상에 도취되고 있는 정열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낡은 틀이 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 과정의 숱한 우여곡절과 시행착오가 바로 그러한 위기의 필연적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나플레옹의 쿠데타와 제정의 부활로 10년에 걸친 프랑스 혁명은 격동의 제1막을 내리게 됩니다. 나플레옹의 등장과 몰락은 철학이 없고 권력 의지만 있는 힘이 결국 어디로 향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힘과 미덕, 이상과 현실이라는 팽팽한 긴장도 사라지고 지금은 다시 '이상이 없는 현실'과 '현실이 없는 이상'이 함께 추락하는 역사를 맞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은 이미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1789년으로부터 정확히 200년이 지난 1989년. 소련의 해체와 페르시아만 침공을 계기로 세계는 패권주의의 역사가 전면화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나마 슬로건으로 남아 있던 프랑스 혁명의 이념마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파리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던지는 투표 용지 속에도 혁명의 흔적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승리라고 믿습니다. 이상(理想)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이라는 시구가 생각납니다.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추락이 이상의 예정된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이상은 대지(大地)에 추락하여야 합니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민들레는 슬픕니다.
소수의 그룹이나 개인에게 전유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이상이 공유되고 있는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 승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대로 역사가 되고, 역사의 반성이 되어 이윽고 역사의 다음 장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혁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신의 세례를 받았는가에 의해서 판가름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2,300만 전 프랑스 사람들이 함께 일어선 프랑스 혁명은 실패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 점철되어 있는 숱한 좌절을 기억하는 방법을 새롭게 바꾸어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인식의 전환이기 때문입니다.

 

길요틴이 서 있던 자리를 밟는 감회가 비상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발밑에 묻혀 있는 혈흔이 전율처럼 번져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은 발밑의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광장을 가득히 메웠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리 위에 쏟아졌던 자유, 평등, 박애의 세례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노력과 마찬가지로 비록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이라 하더라도 너른 대지에 한 알의 씨앗으로 추락함으로써 역사의 긴 이랑을 푸르게 일구는 장구한 서사시로 일어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곡선(曲線)의 콩코드(和合)'이며 '비극에 대한 축복'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진보와 성장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는 많은 사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때 공감했던 감동은 마치 바다를 찾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물길을 틔워 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는 덜 나쁜 세상에 대한 기억을 간직케 하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키워주며, 진보와 성장의 의미를 새로이 만들어가리라 믿습니다.

 

세월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우리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른다.

 

까맣게 었었던 아폴리네르의 시가 떠오릅니다. 오늘도 센 강은 바스티유의 돌맹이들을 적시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물굽이로 새로운 기하학을 가르치면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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