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上海)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황푸(黃浦)강은 양쯔(揚子)강으로 흘러들고, 이미 바다가 되어 있는 양쯔 강은 다시 대해로 이어집니다.
쌓인 피로 때문에 반쯤은 졸 수밖에 없었지만 황푸 강에서 배를 타고 양쯔 강에 두 시간 동안 나는 장강(長江)처럼 흘러드는 아득한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황푸 강 왼쪽에는 만국전축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조계(租界) 시절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가 하면, 오른쪽에 푸둥(浦東) 신개발 지역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수십 층 짜리 고층 건물들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황푸 강 양안(兩岸)은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를 상기하게 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눈앞에 전시하고 있는 듯합니다.
‘상하이를 점령하면 중국을 얻는다’ 고 했던 열강들의 격언은 이제 ‘상하이가 움직이면 중국이 움직인다’ 는 개혁 개방의 구호로 바뀌어 있습니다. 중국은 20년에 걸친 특구 중심의 실험을 끝내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개방의 길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한 번 날아오르면 하늘을 치솟고, 3년 동안 지저귀지 않았으나 한 번 지저귀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일찍이 춘추전국 시대에 이곳 양쯔 강 유역에서 웅지를 펼쳤던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삼년불비(三年不飛)를 생각나게 합니다.
중국은 불비(不飛)와 불명(不鳴)의 시절을 끝내고 21세기를 향한 도약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황허(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북방 시경(詩經)의 세계와는 달리 유난히 개방적인 정신의 모태였던 이 양쯔 강 유역이 개혁과 개방의 새로운 중심으로 일어서고 있다는 사실도 심상치 않은 일로 여겨집니다. 중국 혁명은 물론이고 현재 몰두하고 있는 개혁 개방 역시 이러한 남방적 개방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현대 중국의 당면 과제를 단언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현대 중국의 성격에 대한 논의마저 극히 다양한 것이 사실입니다. 중국은 대륙을 뒤흔드는 혁명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봉건제이며 현 정권 또한 봉건관료 정부를 넘지 않고 있다는 부정적 견해가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전시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출발하여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꾸준히 각급의 단계를 거쳐 이제 이른바 사회주의 초급 단계에 이르렀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시각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 중국의 핵심적 과제가 무엇인가를 두고도 이론이 분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소생산적 토대를 근대 공업 사회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체(體)에 문제에 무게를 두기도 하고, 윤리적 문화를 지식 본위의 문화로 바꾸고 도덕 이상주의를 과학 이성주의로 바꾸어야 한다는 용(用)의 문제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든 13억의 인구와 장구한 역사를 등에 업고 있는 중국 대륙의 행보가 직선적일 리가 없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나는 황허와 양쯔 강을 돌아보면서 중국의 과제는 고(古)와 금(今), 동(東)과 서(西), 그리고 나아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지극히 복합적인 덩어리를 이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치는 좌, 경제는 우(政左經右)라는 실천 강령이라든가 ‘정치는 중앙 집권, 경제는 지방 분권’ 이라는 개혁 원리도 그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 원리는 중국 혁명의 슬로건이었던 ‘이론은 좌경적으로 하고, 실천은 우경적으로 한다’ 는 중국 특유의 대중 노선과도 맥이 닿아 있음을 상기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계획(計劃)과 시장(市場)의 통합을 중심에 놓고 있는 개혁 개방의 과정 역시 중국적 사고의 기본 범주인 명분과 실질의 조화에 충실하려는 노력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나라든 특수하지 않은 나라가 있을 리 없겠지만 중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은 그것이 갖는 무게만큼이나 중국 고유의 길을 모색하게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불교(佛敎)를 불학(佛學)으로 변용시키고 마르크시즘을 마오이즘으로 소화해내는 대륙적 포용력을 부정할 수 없기도 합니다. 외래 사상과 제도를 더욱 고질적 형태로 수용해온 우리 나라와는 분명 차이를 보이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현대 중국의 과제는 그들이 자부하듯이 자본주의를 중국적 이념 체계로 소화해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덩샤오핑(登小平) 이후 중국의 분열을 예상하는 견해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중국은 과거 3,000년 동안 통일된 시대는 1,400여 년에 미치지 못하고 나머지 기간은 분립과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론에 대하여 중국인들은 매우 여유 있게 대응합니다. 현재의 개방 과정이 이미 이러한 분열의 창조적 적용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특구(特區)와 각 성(省)들이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자율성이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천하통일의 시대가 획일적이고 경직된 시대였음에 비하여, 이 분립의 시대가 오히려 역동적인 발전기였다는 역사적 사례를 예로 들기도 합니다.
양쯔 강에서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는 황푸 강 위로 어느새 어둠과 함께 석양이 내리고 있습니다. 나는 이 황푸 강의 석양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석양을 찍자는 나의 제의에 동행한 사진기자가 의아해하였습니다. 상하이는 바야흐로 도약을 준비하는 현대 중국의 상징임에 틀림없으며 당연히 그에 걸맞는 현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석양의 활푸 강이라니, 그것으로 상하이를 전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었습니다. 당연한 반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하이의 신개발지인 푸둥의 개발 현장은 참으로 역동적이었으며, 앞으로의 개혁 개방 과정 역시 상하이를 견인차로 하여 다른 도시와 내륙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가리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만약 중국의 이러한 노력이 두 가지 점에서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 한, 나는 석양이 상하이의 진면목이며 현대 중국의 상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가 석양을 찍자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이를테면 공업화, 과학화, 현대화라는 근대 사회와 산업 사회의 도식을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간 산업 사회가 노정해온 모순은 이미 근대성 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정도로 우려를 낳고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축적 자본이 곳곳을 누비며 야기하는 경제적 혼란이 오늘 우리의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대성의 본질을 직시하는 치열한 고민이 없는 한, 중국의 개혁 개방은 과거를 답습하는 낡은 모형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개혁 개방의 목표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이 과정 역시 강대국의 패권주의적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우려입니다. 사람들은 중국 패권주의의 상징으로 베이징의 중국 외교부 건물을 예로 들곤 합니다. 베이징에 있는 중국 외교부 건물은 세계 최대 규모와 높이를 과시하는 압도적 크기입니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에 국가 경영의 무게를 두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보편적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모가 곧 그 내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다른 패권 국가와 벌이고 있는 저강도低强盜) 전쟁 상황을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질과 양이라는 카테고리에 비추어보더라도 외교부 건물은 분명 다른 질적 국면으로 전환된 중국 외교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화사상(中華思想)이 곧 문화적 포용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신의 고양(高揚)을 우위에 두는 것이 동영의 전통이고 문화입니다. 중국이‘중(中)’일 수 있었던 것은 그 패권이 문화적이었던 한도 내에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장강(長江, 양쯔강) 유역에 난숙하게 꽃피었던 초사(楚辭)의 세계는 진(進)보다는 귀(歸)를 보다 높은 가치로 여기는 노장적(老莊的) 유원함입니다.
현대 중국의 모색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동양적 가치가 21세기 문명에 창조적으로 연결되는 중용(中庸)의 새로운 지평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중국이 열중하는 목표와 과정이 결국 춘추전국 시대를 풍미했던 부국강병론의 현대적 변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새로운 문명의 창조, 21세기 문명에 대한 진솔한 고민과는 어차피 반대 방향을 도모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석양이 물드는 강물 위에서 나는 굴원(屈原)의 시구를 읽습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오늘날 세계 곳곳을 강타하고 있는 도도한 물결은 결코 우리의 정신을 씻을 수 있는 강물이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둘러 발을 씻고 표표히 떠나야 할 홍수의 유역(流域)이라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