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얼굴을 비추지 마라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마라

   다음으로 묵자의 반전 평화론에 대해서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묵자의 반전 평화를 읽으면 반전 평화의 문제가 참으로 오래된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전 평화는 한반도의 가장 절박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오래된 과제이기 때문에 잊고 있을 뿐이지요. 묵자는 여러 편에 걸쳐서 대단히 많은 예화를 열거해가면서 자기의 반전 주장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비공」편非攻篇도 예외가 아닙니다만 일부만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묵자는 공격 전쟁을 반대하는 논리를 펴기 전에 먼저 당시의 일반적 관념을 비판합니다. 상투화된 사고를 반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본문을 모두 소개하지 않고 내용 중심으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묵자다운 논리 전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를 훔쳤다고 하자. 사람들은 그를 비난할 것이고 위정자는 그를 잡아 벌할 것이다. 왜? 남을 해치고 자기를 이롭게 했기 때문이다. 남의 개, 돼지, 닭을 훔친 사람은 그 불의함이 복숭아를 훔친 사람보다 더 심하다. 왜? 남을 해친 정도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남을 더욱 많이 해치면 그 불인不仁도 그만큼 심하게 되고 죄도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남의 마구간에 들어가 말이나 소를 훔친 자는 그 불의함이 개, 돼지나 닭을 훔친 자보다 더욱 심하다. 남을 해친 정도가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 남을 해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불인도 그만큼 심하게 되고 죄도 무거워지는 것이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옷을 뺏거나 창이나 칼을 뺏는 자는 그 불의함이 말이나 소를 훔친 자보다 더 심하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천하의 군자들이 모두 그것의 옳지 못함을 알고 그것을 비난하고 그것을 불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열 명, 백 명을 살인하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을 살인하는 전쟁에 대해서는 비난할 줄 모르고 그것을 칭송하고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고 있다는 것이지요. 묵자는 바로 이것을 개탄합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습니다만 묵자는 그 집단적 허위의식에 대하여 「소염」편所染篇에서 국가도 물드는 것이라는 논리로 비판합니다.

   至殺人也 罪益厚於竊其桃李 殺一人謂之不義
   今至大爲攻國 則弗知非 從而譽之謂之義
   此可謂知義與不義之別乎        ―「非攻」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면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 의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관념 체계에 대하여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시대는 이름 그대로 하루도 전쟁이 그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묵자는 전쟁의 모든 희생을 최종적으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기층 민중의 대변자답게 전쟁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것을 정면에서 반대합니다. 전쟁은 수천수만의 사람을 살인하는 행위이며, 수많은 사람의 생업을 빼앗고, 불행의 구렁으로 떨어트리는 최대의 죄악입니다. 단 한 줌의 의로움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따라서 비공非攻, 즉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상이지요. 그런 점에서 반전 평화론이야말로 전국시대 최고의 사상이며 최상의 윤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전쟁 방식에 의한 정의의 실현이 공공연히 선언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용인하는 한 그것이 어떠한 논리로 치장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기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今萬乘之國 虛數於千 不勝而入 廣衍數於萬 不勝而辟 然則土地者所有餘也 王民者所不足也 今盡王民之死 嚴上下之患 以爭虛城 則是棄所不足 而重所有餘也 爲政若此 非國之務者也        ―「非攻」
   이제 만승의 나라가 수천의 빈 성을 빼앗았다면 그 수천 개의 성 모두에 입성하기 어렵고, 수만 리에 달하는 넓은 땅을 빼앗았다면 그 넓은 땅을 모두 다스리기가 어렵다. 이처럼 땅은 남아돌고 백성은 부족하다. 이제 백성들의 생명을 바치고 모든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리면서 하는 일이 고작 빈 성을 뺏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부족한 것을 버리고 남아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정치가 이러한 것이라면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묵자의 반전론은 매우 정연한 논리를 가지고 전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묵자는 공전攻戰(공격 전쟁)을 예찬하는 자를 반박합니다. 공전이 비록 불의不義하지만 이익이 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반박합니다. 제齊나라와 진晉나라가 처음에는 작은 제후국이었으나 전쟁을 통하여 영토가 확장되고 백성이 많은 강대국으로 발전하였다는 사실을 들어 공전을 예찬하는 논리가 있지만 묵자는 단호하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논박합니다. “만 명에게 약을 써서 서너 명만 효험을 보았다면 그는 양의良醫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이 아니다. 그러한 약을 부모님께 드리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몇 개의 전승국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패전 국가의 비극과 파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쟁은 인명과 재산의 엄청난 파괴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묵자는 전쟁의 파괴적 측면에 대하여 매우 자세하게 예시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수년, 빨라야 수개월이 걸린다. 임금은 나랏일을 돌볼 수 없고 관리는 자기의 소임을 다할 수 없다. 겨울과 여름에는 군사를 일으킬 수 없고 꼭 농사철인 봄과 가을에 (전쟁을) 벌인다. 농부들은 씨 뿌리고 거둘 겨를이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가는 백성을 잃고 백성은 할 일을 잃는 것이다. 화살·깃발·장막·수레·창칼이 부서지고, 소와 말이 죽으며, 진격 시와 퇴각 시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게 된다. 죽은 귀신들은 가족까지 잃게 되고 죽어서도 제사를 받을 수 없어 원귀가 되어 온 산천을 떠돈다. 전쟁에 드는 비용을 치국治國에 사용한다면 그 공은 몇 배가 될 것이다.

   묵자에게 있어서 전쟁은 국가가 근본을 잃게 되는 것이며 백성들이 그 생업을 바꾸어야 하는 일입니다(國家失本 而百姓易務也). 천하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일입니다(天下之害厚矣). 전쟁의 폐단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이나 대신들이 그런 짓을 즐겨 행한다면 이것은 천하의 만백성을 해치고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묵자의 비공의 논리입니다(王公大人樂而行之 則此樂賊滅天下之萬民也).
   묵자는 다만 전쟁의 피해를 들어 그 부당함을 비판하는 논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공격 전쟁 그 자체가 결국은 패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옛날 일은 들어서 알고 지금 일은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공격 전쟁으로 망한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尙者以耳之所聞 近者以目之所見 以攻戰亡者 不可勝數: 「非攻」)
그중에서도 특히 힘만 믿고 자만하던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사례와 연전연승으로 오만해져 공격을 그칠 줄 몰랐던 진晉의 지백智伯이 결국은 약소국의 연합 전선에 무참히 패망하였던 사례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대단히 감동적인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래서 묵자께서 말씀하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   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쟁이 이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전쟁이야말로 흉물임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是故 子墨子曰 古者有語曰 君子不鏡於水 而鏡於人 鏡於水 見面之容 鏡於人 則知吉與凶 今以攻戰爲利 則蓋嘗鑒之於智伯之事乎 此其爲不吉而凶 旣可得而之矣: 「非攻」)

마치 묵자가 오늘의 세계를 눈앞에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군사적 패권주의가 당장은 부강의 방책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패망의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묵자의 준엄한 반전 선언이 살아 있는 언어로 다가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울에 비추지 마라”는 묵자의 금언은 비단 반전의 메시지로만이 아니라 인간적 가치가 실종된 물신주의적 문화와 의식을 반성하는 귀중한 금언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