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
方舟而濟於河 有虛船 來觸舟 雖有惼心之人不怒
有一人在其上 則呼張歙之 一呼而不聞 再呼而不聞
於是三呼邪 則必以惡聲隨之
向也不怒而今也怒 向也虛而今也實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山木」
「산목」에서 예문을 하나 더 골랐습니다. 축자逐字 해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전체의 뜻을 중심으로 읽어보기로 하지요.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
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
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
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步行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장자는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적이라거나, 사회적 의미가 박약하다거나, 실천적 의미가 제거되어 있다는 비판은 『장자』를 잘못 읽거나 좁게 읽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국강병이라는 전국시대의 패권 논리가 장자에게 있어서 어떤 것이었던가를 우리는 상상해야 합니다. 도道란 무엇인가, 패권이 인간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인가를 장자는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자가 이처럼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고 나아가 최대한의 자유 개념을 천명한 까닭은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패권 경쟁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이러한 근본주의적 비판 정신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에 요구된다는 것이지요.
빈 배의 예는 너무 비현실적입니까? 자기를 비운다는 표현을 자주 접하기도 하지만 빈 배라 하더라도 내가 타고 있으면 빈 배가 될 수 없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지요?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장자의 ‘나비 꿈’은 매우 함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자의 ‘나비 꿈’은 우리가 화두로 삼고 있는 관계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비 꿈’은 제2편 「제물론」의 제일 마지막 장입니다. ‘제물론’이라는 편명篇名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함께 그 의미를 새겨보기로 하겠습니다만, 제물齊物이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물物이 관계되고(齊)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빈 배라고 할 경우 “나는 어느 배에 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불필요한 것이지요. ‘나비 꿈’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