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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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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가 마라톤 클럽의 멤버인
백두산인가...하여튼 그 동생인가, 형님이 하는 락그룹의
공연을 보러 가서였지.
옆에 흰 샤츠를 입고
순박하게 생긴 왠 촌놈이 앉아 있는 거야.
나중에
그게 너란걸 알았지.

내 첫느낌...
그냥 촌놈이구나.
참 촌스럽게 꾸밈 없이 순박하구나.
그 느낌이었어.
번드르하게 지식을 포장해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표현하는 사람들보다 난 너의 촌스럽고 투박스러운
질그릇 같이 포장 안 된 지식과 마음이 참 좋았어.

두 번째 너를 봤을 때가 쌍동이들과 너의 아내, 정준호님,
마라톤 멤버들이 우리집에 왔을 때였지.
그때 우리는 참 많은 얘기를 했고
너의 솔직하고 진솔한 얘기를 듣게 되었어.
그리고 우리는 누님, 동생으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마음 속으론 항상 잘 있을 거다, 응원하며 지냈지.

가끔 네가 이런저런 세상살이에 힘들어 술을 마시고
전화를 걸어 엉엉 울 때, 내가 그랬지.
나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너도 견뎌야한다.
난 네가 견뎌내리라 믿는다.
견뎌내는 자가 승자다.
넌 아기처럼 훌쩍이며 그런다고 약속했어.

세 번째 만남이 선생님과 함께 중국으로 가기 전에
승혁님과 함께 식당에서 본 것이었나?
맞을 거야.
넌 그때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싶어 갈증이 난 사람같았어.
하지만 중국에 가서 많이 얘기하자, 약속하고 헤어졌지.

그리고 중국으로 갔어.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되어 버렸지만.
사실 중국에서 여러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우리가 얘기할 시간은 별로 없었어.
밤을 새우고 술 마시는 체력이 되지 못해
너의 말을 오래 들어줄 기회를 갖지 못했어.
하지만 아침에 넌 술이 덜 깨 비몽사몽
밤새 술을 마셔 정신이 없다고  했지만
너의 얼굴은 홀가분한 표정이었어.
다른 사람들과 밤새 술자리에서
많은 얘기들이 오갔구나, 다행이다,
생각했지.

그리고 돌아와 몇 번의 전화통화가 다였어.
하지만 난 네가 포기하지 않고 마라톤을 하듯
힘든 너의 인생을 달리며 잘 있다고 믿었어.

그리고 가끔 아기처럼 엉엉 울며 전화 했을 때
내 말에 넌 콧물을 훌쩍이며 알겠다고 했고
그러겠다고
견디겠다고
배신감도 증오도 미움도 서운함도
용서하진 못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다고 했어.

그 후 종종 더불어 숲 댓글에서 만나기도 하고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가끔 넌 애기같이 엉엉 울며
콧물을 훌쩍이며
그렇게 시간은 갔어.

다 큰 아기아빠가 엉엉 울 때,
난 언제나
독하지 못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고
화를 내기만 했던 것 같아.
마음대로 간단하게 죽을 수 있다면
하루에도 열 번도
더 죽을 일 투성이라고,
그게 인생이란 덪이라고.
우린 덪에 갇힌 존재라고.

아기보다 넌 더 여렸고
아기보다 더 천진하고
아기보다 더 정직했어
그런 네가 부조리로 꽉 찬 이 세상을 못 견뎌한 것은 당연했지.
정제 되지 않은 너의 마음 그대로 세상을 사는 너
힘든 다는 것은 알았어.
하지만 난 네가 '아빠'라는 이름으로 견뎌낼 줄 알았어.
그렇다고 나도 같이 울며 동조할 순 없잖아.
나는 일부러 더 크게 호통을 쳤을 거야.

나 같은 사람도 견디며 사는데
네가 왜 못 견디냐며 화를 내면
넌 그러겠다고 훌쩍이며 대답했지.

그런데
너는
결국
포기했더구나.

내가 분명히 말했어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거라고.
그러니 견디며 살라고.
독해져야 한다고.
그러겠다던 넌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그런 너에게 '삼가 명복을 빕니다.'
고통없는 곳에서 편히 쉬라고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정말 넌 이제 고통 없는 거니?
넌 자유한 거야?
하지만 방법이 너무하다고 생각하진 않니?


어제 12시가 다 돼 너의 소식을 숲에서 읽고
난 후회로 가슴을 쳤어.
왜 내가 너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챙겨주지 못했을까.
왜 내가 너의 전화를 더 친절하게 공감하며
다독이며 받아주지 않았을까.
왜 무조건 울면 화를 내고 호통만 쳤을까.
왜 한 번도 같이 울어주지 않았을까.



너를 세상에 혼자라는 마음으로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왜 그렇게 인색했을까.
왜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외로움과
고통을 끝내도록 아무 도움을 못 줬을까.
왜 내 삶에만 그렇게 연연했을까.
왜 그렇게 무심했을까.

과거에 연연한다고 나무랐고
잊지 못한다고 나무랐고
진취적이지 못하다고 나무랐고
털어버리지 못한다고 나무랐고
사람에게 너무 기대한다고
나무랬어.

너의 고통과 외로움에 도움이 못 됐어.
그저 나무라기만 한 거야.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 게 너를 위하는 길이라고.
이해하라고 잊으라고
참고 견디라고 만 했어.
그래서 지금 나의 마음은 지옥이야.

당장 달려가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몸이 떨려 운전도 할 수 없었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택시도 없었어.
살아가면서 우울증 약에 고마워 했지만
어제처럼 우울증 약이 고마운 적은 없었지.


그렇지 않아도 난 요새 돌아가신 엄마와 아이들 아빠를 생각하며
후회로 뜨끔뜨끔 한 가슴의 통증을 손으로 누르며 견디고 있었어.
그러다 너의 소식을 들은 거야.

김우종,
고맙다.
끝까지 내 삶에
우울증 약을 보태줘서.
내 삶에
또 하나
뜨끔뜨끔한 통증을 보태줘서

네가 정말 편하게 갈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정말 편한 거니?
너의 영혼이 모든 것을 잊고
편하게 레테의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가야 할 시간이 되었어.
지금은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나지만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잘가.
안녕.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지내.
이렇게 말하게 될까.
아니면 나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하게 될까.

그렇게 내 앞에 놓인 바로 몇 시간 뒤의 일도
모르는 게 우리 인생이고 삶이야.
단지 우리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우린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이야.

너도 그 사실은 알잖아.
어차피 죽을 거
뭐가 그리 급했니
뭐가 그리 바빴어
바보야.
좀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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