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爲政」

   이 글은 덕치주의德治主義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그러한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정」편의 이 구절은 법가적法家的 방법보다는 유가적 방법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따라서 법에서 적극적 가치를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덕치주의는 법치주의에 비해 보다 근본적인 관점, 즉 인간의 삶과 그 삶의 내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춘추전국시대는 법가에 의해서 통일됩니다. 춘추전국시대 같은 총체적 난국에서는 단호한 법가적 강제력이 사회의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치德治가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治世의 학學이라고 한다면 행정명령과 형벌에 의한 규제를 중심에 두는 법치法治는 난세亂世의 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법가와 유가의 차이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구절을 두 가지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형刑과 예禮를 인간관계라는 관점에서 조명해보는 것입니다. 법가 강의 때 다시 설명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사회의 지배 계층은 예로 다스리고 피지배 계층은 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주나라 이래의 사법司法 원칙이었습니다. 형불상대부刑不上大夫 예불하서인禮不下庶人이지요. 형은 위로 대부에게 적용되지 않으며 예는 아래로 서인에게까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물론 예의 의미도 매우 다양합니다만 여기서는 형과 예의 차이를 전제하고 논의를 진행하지요.

   예와 형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영향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은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에 비하여 예는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우회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관계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입장이지요. 사회적 질서는 이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회의 기본적 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 인간관계의 아름다움이란 한낱 환상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형벌에 의한 사회질서의 확립이 더욱 시급한 당면 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과 예는 그 접근 방법에 있어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간관계의 개념으로 재조명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란 바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형은 인간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춘추전국시대를 법가가 통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통일 제국인 진秦나라가 단명으로 끝납니다. 이러한 사실을 들어 법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견해라 할 수 있습니다. 진한秦漢은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진秦의 시기는 통일과 건국의 과정이며 한漢의 시기는 이를 계승하여 통일 제국을 다스려 나가는 수성守城의 시기라고 보아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법치와 덕치의 비교는 그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부끄러움(恥)에 관한 것입니다.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되지만, 정형政刑으로 다스리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이며 설사 법을 어기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교통순경이 교통법규 위반 차량 네다섯 대 중에서 한두 대만 딱지를 끊자 적발된 차량 운전자가 당연히 항의를 하였지요. 저 애도 위반이라는 것이지요. 교통순경의 답변이 압권이지요. “어부가 바닷고기 다 잡을 수 있나요?” 처벌받는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다만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의 『타락론』墮落論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의 지표로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집단적 타락 증후군도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만, 우선 이 교통법규 위반 사례와 같이 모든 사람이 범죄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적발된 사람만 재수 없는 사람이 되는 그러한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명인의 부정이나 추락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마음 대신에 고소함을 느끼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부정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거나 추락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과 추락에 대하여, 그것도 사회 유명인의 그것에 대하여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단계가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정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전략적 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인간관계의 지속성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