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소개]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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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08-12-01
미디어 신동아 김현미
신동아 2008년 12월호 (통권 591호) [창간 77주년 연속 별책부록]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강의 신영복 지음 돌베개

신영복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감옥과 바깥 세상에서 각각 20년을 살았는데,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정보가 전혀 없는 감옥 안에서는 철저히 이론적인 추리, 자기 성찰적인 사고가 가능했다. 출소 이후 정보는 넘쳐나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워 과거 논리적 사고가 더 절실해졌다.”

‘강의’는 그가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강의를 녹취해서 인터넷 신문에 연재한 뒤, 그것을 다시 정리해서 펴낸 책이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고전 읽기의 단초를 제공한 20년 옥살이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방에 앉아서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 다시 읽기였다고 한다. 이처럼 20년을 곰삭은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은 출간되자마자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고전의 내용을 강의하기보다 오늘날의 여러 당면 과제를 고전을 통해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신 교수는 책을 출판하면서 ‘저자’라는 호칭에 대한 부담도 토로했다. 제자백가들의 사상을 바탕으로 역대의 뛰어난 주석과 해설에서 견해를 취해 풀이(述)했을 뿐 무엇 하나 지은(作)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겸손일 뿐이다. 신 교수는 ‘관계론(關係論)’을 화두로 삼아, ‘시경’ ‘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를 차례로 훑어나가며 그 속에 담긴 뜻과 현실 문제를 연결 짓는 새로운 고전 독법을 보여준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존재론(存在論)’에 있다면, 동양 사회의 그것은 ‘관계론’이라는 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이다. 여기서는 인간(人間)을 인(人)과 인(人)의 관계로 이해하고, 한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인성(人性)이라고 말한다. ‘논어’에서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라고 한 것이 바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성을 가리킨다. 인간을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이라 보았을 때 사회성은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된다. 동양 사회는 이러한 인성을 고양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동양 사상의 특징인 인간주의다.

 

▼ Abstract

저자의 긴 서론 다음엔 ‘시경’에 대한 해설이 이어진다. 3000여 년 전 중국의 시가 305편을 엮은 ‘시경’ 가운데 절반이 넘는 ‘국풍(國風)’은 각 제후국의 채시관(採詩官)들이 백성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다. 이런 노래를 수집한 이유는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이 오래된 시에서 저자가 발견하고자 한 것은 사실성과 진정성이다. ‘여분(汝墳)’이라는 시에는 은나라 말기 전쟁터나 건설 등의 사역에 동원되었다가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가난한 여인의 모습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이라는 저자의 해설에 귀 기울여 보다 보면 어느새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정호승의 ‘종이학’, 임화의 시 앞에 다다른다. 저자가 굳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으로 ‘강의’를 시작한 까닭은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이며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방대하고 난해한 책으로 유명한 ‘주역’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저자는 ‘주역’에 담긴 사상을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에 비유한다. ‘주역’은 분명히 점을 치기 위해 만든 책이지만, 수천수만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낸 일종의 ‘법칙성’이라고 봐야 한다. 왜 춘추전국시대에 이러한 책이 쓰였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기까지의 혼란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변의 진리를 갈구한다. 바로 그러한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을 정리한 책이 ‘주역’이다. 여기서는 ‘주역’ 그 자체를 읽기보다는 기초 개념 등 ‘주역’을 읽기 위한 준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해온 사상이 유학이라면 그 중심에는 공자의 ‘논어’가 있다. ‘논어’는 춘추전국시대에 수많은 담론이 경쟁을 벌일 때 사회의 본질을 ‘인간관계’에 두고 설명한 것이 특징이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가 사회의 근본이라는 덕치(德治)의 논리는 당시 매우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맹자’는 연목구어(緣木求魚),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호연지기(浩然之氣)와 같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숙어의 출전이기도 하다. 또한 ‘맹자’는 농가, 병가, 종횡가 등 당시의 다른 사상을 많이 소개하고 비판하고 있어 제자백가의 사상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이어서 한문 문학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맹자가 공자를 잇는 사상가냐, 공자에 대한 최대의 이단자냐는 상반된 견해를 염두에 두고 ‘논어’와 ‘맹자’를 비교해서 읽는 것도 흥미로운 고전 독법이 될 것이다.

저자는 ‘노자’가 ‘논어’보다 동양 사상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유가 사상은 서구 사상과 마찬가지로 나아감 즉 ‘진(進)’의 사상인 데에 반해, 노자의 사상은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귀(歸)’의 사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사상을 노자를 한 편으로 하고 여타 학파를 다른 한 편으로 나누기도 한다.

2006년 3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2006년도 입학식’에서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신입생들을 위한 축사를 하고 있다.
 

‘장자’에는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출전인 장자는 춘추전국시대 패권 경쟁을 위한 방법론에 몰두하는 제자백가를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해 비판했다.

‘묵자’ ‘순자’ ‘한비자’에서 고전 강독은 끝나고,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은 개요 소개에 그치고 있다. 사실 ‘관계론’이라는 주제에서 볼 때 ‘불교’와 ‘중용’ 등은 더 상세히 다뤄져야 옳지만 시간과 지면의 한계로 책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다만 후기에서 저자는, 사상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성찰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이라는 말로 고전 강독의 끝이 곧 실천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 About the author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1년생인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숙명여대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20년20일을 채우고 1988년 8월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자마자 펴낸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저자의 옥중 서신을 엮은 이 책은 지난 20년간 60만부가량 팔린 스테디셀러로, 2008년 8월에 출간 20주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그밖에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등의 저서가 있다. 소주 ‘처음처럼’은 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고 제품 로고도 ‘신영복체’라고 불리는 그의 글씨로 만들었다. 최근 성공회대 인문학습원 원장직을 맡아 ‘전문경영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 Impact of the book

‘강의’가 출간되자 도올 김용옥의 고전 강독과 비교하는 이가 많았다. 도올은 ‘노자’와 ‘논어’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동양고전 읽기 붐을 일으킨 주역이다. ‘강의’가 2005년 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에 들었을 때 신문에 실린 짧은 서평이 인상적이다.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도올 김용옥의 고전 강독과 대비되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잔잔히 스며드는 고전 강독.”

그런데 그 힘이 만만치 않다. 출간 4년이 흘렀지만 인기는 사그러들 줄 모르고 ‘고전 강독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일반인 대상의 인문학 강좌가 인기를 더해가는 가운데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는 데 일조했다.

 

▼ Impression of the book

고전과 관련한 책은 크게 ‘무엇을 읽을 것인가’와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나눌 수 있다. 즉 고전의 원문에 충실하면서 해석 중심으로 쓴 책은 ‘무엇을 읽을 것인가’에 해당한다. 반면 고전의 텍스트를 근간으로 삼되 저자의 새로운 해석과 현실 문제 접목을 시도한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로 분류할 수 있다. ‘강의’는 후자에 가까운 책이다. 저자도 비전공자를 염두에 두고 가장 기본적인 고전에서 예문을 뽑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설서만 읽다 보면 원전에 대한 갈증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무엇을 읽을 것인가’로 넘어가게 된다. 한 걸음 나아가 누구의 해설도 아닌 자신만의 원전 읽기를 시도한다면 금상첨화다. ‘강의’는 비전공자가 스스로 동양고전에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책이다.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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