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8괘八卦를 낳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8괘 중에서 태극기에 있는 네 개의 괘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8괘를 구성하는 세 개의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를 효爻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효와 괘를 중심으로 『주역』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괘는 ‘걸다’라는 뜻입니다. 걸어놓고 본다는 뜻이지요. 괘에다가 어떤 의미를 담아놓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제 예를 들어봅시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물이 있고 사물과 사물이 관계하여 이루어내는 사건이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비상사태 또는 공황 상태라는 표현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사물이 사건으로 발전하고 사건이 사태로 발전하는 여러 가지의 경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효와 괘를 이러한 사물 또는 사물의 변화를 담지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효爻가 사물을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괘卦가 그런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난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각 구성 부분은 어느 경우든 사물, 사건, 사태와 같은 범주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역』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이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범주는 기본적으로 객관적 세계의 연관성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 세계의 변화를 추상화하고 단순화한 법칙 즉 간이簡易이기 때문에 세계의 복잡한 연관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제한성 때문에 위에서 지적했듯이 각 구성 부분을 여러 범주로 사용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역』의 판단 형식은 대단히 중층적이며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판단 형식에 비하여 훨씬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서구적 사고 양식과 대단히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판단 형식은 근본에 있어서 객관적 세계를 인식하는 철학적 사유에 기초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서구적 판단 형식과 주역의 판단 형식의 차이는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과 관계론적 인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누구나 각자의 사회관이 있습니다. 사회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관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인식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관과 인간관 등 우리가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지 않고 있든 익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인식 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는 개인의 집합이다” 또는 “인간은 이기적이다”와 같은 인식 틀을 봅시다. 이러한 사고는 매우 단순한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을 분석함으로써 개인의 집합인 사회 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틀입니다. 사회가 개인의 집합이라고 하는 경우 인간이 집합 속에 있든 개인으로 있든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지요.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면 인간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장 골목에 있건 가정에 있건 변함없이 이기적이어야 합니다. 존재론의 폭력적 단순성이라 할 만한 것이지요. 이것은 『주역』의 구성과 비교하자면 효爻로써 소성괘를 설명하고 나아가 대성괘마저도 효의 단순한 집합으로 설명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극히 1차원적 사고방식입니다.
이와는 달리 이를테면 계급적 관점으로 사회 구성을 인식하는 소위 좌파적 인식 틀도 있습니다. 신분, 민족성, 경제구조 등 다양한 인식 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의 인식 틀을 조합하여 새로운 틀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사회나 인간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 틀을 잘 관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우리의 인식 틀이 의외로 기계적이고 단선적인 논리 구조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대체로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 논리로 짜여져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효와 괘를 설명하면서 어쩌면 적절하지 않은 예를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단순한 인식 구조를 반성하자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이러한 우리들의 인식 구조에 비하여 『주역』의 판단 형식은 객관적 세계의 연관성을 훨씬 더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요.
『주역』에는 8개의 소성괘와 64개의 대성괘가 있습니다. 이 64개의 대성괘마다 괘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성괘를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개의 효마다 효사가 붙어 있습니다. 『주역』의 경經은 8괘, 64괘, 괘사, 효사의 네 가지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경의 양만 하더라도 상당한 분량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역』을 64개의 대성괘를 중심으로 읽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려는 판단 형식이 바로 이 대성괘에 가장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대성괘에는 그 괘의 성격을 나타내는 이름이 있고 괘 전체의 의미를 나타내는 괘사가 달려 있으며 괘를 구성하는 여섯 개의 효와 그 효를 설명하는 효사가 달려 있습니다. 이 대성괘를 『주역』의 기본 범주로 이해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성괘를 『주역』의 기본적 범주로 이해하는 경우 우리는 칸트나 헤겔 또는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주들과는 그 수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범주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더구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판단 형식의 단순함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